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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건국인
민주당 대표 김한길(정외 71) 동문
13.06.11 조회수 : 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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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동문이 4년 만에 다시 정치계로 돌아온 데 이어 민주당 대표로 당선되어 당을 이끌게 되었다. 당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그는 민주당 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인기 없고 욕 많이 먹는 당 대표가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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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정외 72) 동문이 지난 54일 경기 고양시 제2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됐다.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선택받은 김한길 동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친 작전 참모형 리더로 불려왔다.
 
하지만 2004, 2008년 총선 등 전국단위 선거와 당내 경선 등을 거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고 현재 원내 127석을 가진 제 1야당을 이끌 대표로 선택받으면서 '참모형'에서 벗어나 통합형?혁신형 리더로 탈바꿈했다.
 
김한길 동문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 무엇보다 계파 정치를 청산하겠다“‘친노비노’, ‘주류비주류의 명찰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민주당이라는 명찰만 달고 오로지 혁신에 매진하자고 밝혔다.
 
당이 처한 위기의 엄중함에 대해 모두가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표로 뽑힌 것 같다우리 모두는 운명공동체로 여러 의원들 모두의 동지임을 알아 달라고 강조했다.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낸 아버지 고() 김철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부터 야권 성향을 보인 그는 1996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한국당의 비례대표 공천 제안을 거절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에는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공보팀장, 대통령인수위원회 대변인 등을 잇달아 맡았다. 1999년에는 만 46세의 나이로 최연소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 임명돼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중학교 의무교육' 등 국민의 정부의 주요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2000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중용되기도 했다.
 
2002년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에 기여해 대선 승리, 즉 두 번째 정권창출에 다시 한 번 역할을 했다. 200417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3선 의원이 된 그는 2006년에는 17대 국회 후반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의원들의 사령탑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08"17대 대통령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 신임대표는 20124·11 총선에서 서울시 광진갑 지역 후보로 공천을 받으며 정계로 복귀, 4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뒤 전국을 돌며 경청투어에 나섰던 김 동문은 "당원과 지지자들은 내게 민주당을 혁신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수권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주셨다"며 지난 324일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412일 컷오프(예비경선)를 무난히 통과한 그는 이용섭 후보와 강기정 후보의 범주류 후보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김한길 동문을 비롯한 민주당의 새 지도부는 지난 대선과 재보선 패배 이후 침체에 빠진 당을 혁신하고 오는 10월로 예정된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이끌게 된다.
 
소설가 출신 정치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김 동문은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로 등단한 뒤 1993년에는 밀리언셀러인 장편소설 '여자의 남자'를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소설가로 입지를 굳히기도 했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미주지역 기자로 언론에 몸담기도 했다.
 
약력
 
1953년 일본 도쿄 이대부속고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장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공보팀장·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중도통합민주당 대표 15·16·17·19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