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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문학관 착공 및 집필관 준공식 가진 김홍신(국문 66) 동문
18.09.12 조회수 : 1,222
건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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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강연,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통일의병 대표, 10년째 이어오는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 각종 심사위원과 홍보대사 등 김홍신 동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건강은 마음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바쁨에 치이지 않고 즐긴 덕에 김 동문의 얼굴엔 생기가 눈에 띄었다. 아울러 한국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로 130여 권의 작품을 출간한 그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김홍신 문학관이 집필관 준공에 이어 금년 말이면 충남 논산시에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 623일 충남 논산시 내동에서 김홍신 문학관 착공 및 집필관 준공식이 있었다. 연면적 1,617m2(489) 규모로 세워지는 이곳은 교육관과 세미나실, 전시실, 카페 등을 갖추게 되는데 그 중 이미 준공된 집필관은 김홍신 동문 및 작가들의 창작실로 활용하게 된다. 이날 김 동문은 논산의 원류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 문학을 앞세운 선비정신을 되찾는 일이라며 누구나 편안하게 문학을 말하고 문학으로 세상과 다시 소통할 수 있는 중추가 되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문학은 영혼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것입니다. 저희 집 마당의 소나무를 전지하면 며칠간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히 메웁니다. 가지에 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나온 송진이 향기를 퍼뜨리는 것이지요. 저는 죽을 때까지 만년필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소망입니다. 문학으로 세상을 밝히고 아름다운 향기를 세상에 남게 하고 싶습니다.”

 

한국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 불편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올곧은 삶 선택

의대진학을 꿈꾸며 고3때까지 이과생이었던 그는 1966년 모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재수시절 7편의 단편소설을 쓰며 문학적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입학하자마자 학보에 그의 소설이 실렸고, 건대신문 역사상 최초의 연재소설 역시 김 동문의 작품이었다. 건국문단의 창립 부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 그는 건대신문 문화상을 2회 받고,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ROTC 장교로 전역 후 월드비전의 전신인 한국 선명회의 홍보팀에 입사, 한센병 환자들과 2년여를 함께 지냈다. ‘나병이라는 이름을 한센병으로 바꾸는 데에도 일조를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그의 첫 장편소설 해방영장이 탄생했다. 1976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 동문은 1981인간시장을 통해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밀리언셀러작가가 됐다. 한달 반 만에 10만권을 돌파하더니 2년뒤 100만권, 560만권이라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어떻게 보면 그의 반골기질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관이었다. 내 몸 하나 먹고 사는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민족,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비판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다. 앞장서서 소리치고 두드리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내 정신을 지키고 내가 죽을 때 비겁하거나 부끄럽게 산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기쁨이 되도록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험난한 국회에서 8년 연속 의정평가 1위를 차지한 것은 폼잡지 말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자, 바른길로 가자는 신념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지지하고, 그른 사람은 끝까지 반대했지요. 타협하며 덕 보는 길도 있지만 세월이 지나도 바른 역할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김 동문은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떠났지만 선관위 산하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는 사회 각 분야의 우수한 강사진이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된 인원을 견실하고 건강하고 법을 잘 지키는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 바른 정치인으로 배출하는 곳으로, 불편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애썼던 그의 행보가 지금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민족정신에 기반한 우리 모교, 일류명문 위해 발전하는 길 최대한 모색

그가 입학한 해부터 모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정원제를 실시했다. “유석창 박사님은 독립운동가다운 면모로 발전이 느려도 원칙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며 새삼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낸 김 동문은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 기본 뜻이 있는 대학인만큼 반드시 발전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교는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입니다. 제대로 발전시키려면 총장은 교수들을 추켜세우고 독려하여, 학생들을 잘 가르쳐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데에 진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사장은 누리는 자리가 아닌, 자기희생이 필요한 자리로 설립자 정신을 되살려 외적인 부분에서 학교가 발전하는 길을 최대한 모색해야 합니다. 바퀴 두 개는 균형이 무너지면 쉽게 쓰러지지만 네 개의 바퀴는 안정적이지요. 학교가 바른 길로 가기 위해 법인과 교직원, 총동문회, 학생 네 개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야 합니다.”


당장의 앞일이 아닌 5년 뒤, 10년 뒤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해야 함을 강조하는 그는 재단 이사 역시 재정과 회계분야의 전문가, 미래기획이 가능하고 홍보 전략이 뛰어난 전문가 집단으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국 발전에 무관심한 동문회 외곽의 동문들에게도 모교의 일인 만큼 22만 명의 동문 중 최소 5만 명이라도 의식을 갖고 힘을 모아주면 모교와 동문회는 그 이상의 발전을 이룰 것이라며 참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