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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용(행정 68) 동문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이 6만권 장서 소장가로 이어져"
20.04.20 조회수 : 311
건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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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행정관료로 2003년에 퇴임한 후 현재까지도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미술, 건축, 사진 문화예술관련 전문서적 약 60000여권 책을 수집한 소문난 장서가 최진용 동문의 집은 마치 서점에 온 것처럼 방마다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거의 매일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게 벌써 50년이 넘게 습관이 되어 책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그나마 책을 정리하며 책을 들춰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방송기자를 꿈꾸던 가난한 학창시절

학창시절 등록금 조차 낼 형편이 못돼 교무실에 불려가곤 했지만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편으로 문학을 좋아해 교지편집위원을 맡고 학교도서관 봉사를 자처해 동산중학교시절엔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을 읽고 쓴 독후감으로 1등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홍자성의 채근담이라는 책을 부상으로 받아 막연히 작가나 방송기자를 꿈꾸기 시작한 그는 어려운 형편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막노동꾼에서 공무원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한 후 뚜렷한 꿈도 없이 건설현장 막노동판을 다녔을 시절 우연히 KBS 방송을 보며 잊고 있었던 방송기자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수소문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KBS가 국영방송으로 공보부 산하기관이라 공무원이 되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시험을 준비하여 19676‘5급행정직(현재 9)’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68년 모교 정법대학 행정학과 야간부에 입학해 1학년을 마치고 입대, 1972년 제대 후 복직에 이어 복학을 했다. KBS방송국에서 AD수업을 받으며 꿈을 좇던 당시 KBS가 공영방송으로 바뀌었고, 공보부도 문화공보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결국 방송에 대한 꿈을 접고, 당시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한 1차문화예술진흥 5개년 계획을 입안하는 기획팀에 배치되어 일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이 계획을 통해 김 동문은 7년간 문화예술 정책 수립에 관여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거물들과 자연스럽게 의견을 청취하고 대안을 고민했던 시절로 문화예술의 대가들과 거의 매일 회의와 술자리를 함께 하다 보니 그분들과의 대화를 위해서라도 관련 책을 미리 읽으며, 본격적으로 문화예술 관련 서적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현장을 알아야 행정을 제대로 할 것이라는 판단에 각종 공연, 전시마다 쫓아다녔고, 관련 서적을 모으기 시작하며, 70년대부터는 일주일에 공연을 많게는 10여 편씩 봤을 정도로 점점 빠져들었다고 한다.

 

젊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만났던 인연과 정책실현

10.2612.12로 전두환 정권으로 바뀌면서 2차 문예진흥 5개년계획이 중단되고 1980새문화정책이 실행되며 예술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미술, 영화분과를 담당하는 팀장(사무관)으로 승진을 했다.

 

1990년에는 예술원 진흥과장(서기관)으로 진급하여 이어령 선생이 초대장관으로 부임했을 당시 어문과장으로 발령받아 국립국어연구원을 설립하고, ‘외래어표기위원회를 만드는데 매진하였습니다. 영화진흥 과장시절에는 영화시장 전면개방으로 영화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원방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험을 모아서 한국영화정책흐름과 전망이라는 책도 집필을 했습니다.”

 

9급공무원으로 시작해 국장으로 명예퇴직 하기까지

그는 전통예술과 초대과장, 출판과장을 거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과장 그리고 1997년 문화부 감사과장 후 국장(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1999년 국립극장극장장으로 취임 당시는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에 남습니다. IMF 경제위기로 직원 50% 감축과 국립합창단 해체 등 지침을 받고 고심을 하였습니다. 국립극장 안에는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 등 전속단체와 상주단체, 예술진흥회, 아르바이트학생까지 900여명이었는데, 만약 그때 국립합창단을 없앤다면 각 지방의 합창단이 모두 없어져야 했습니다.


그 당시 함께 가는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결국 국립합창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 등은 법인화해 예술의 전당으로 이관시키는 것으로 살리고, 국립극장은 슬림화 한 후, 체질강화 대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2002년에는 월드컵 조직위원회 기획조정국장을 맡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사무국장, 2003년 대한민국예술원 사무국장(이사관)을 끝으로 54세 젊은 나이에 명예퇴직을 하여, 현재 9급공무원으로 시작하여 국장급으로 오른 문화예술분야 공무원의 전설이 되었다.

 

수집한 60000 문화예술 전문 도서박물관 설립이 꿈 작가로서의 삶도 이어가고 싶어

그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사무처장,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의정부예술의전당 대표를 거처 2016년 인천문화재단 대표로 2년간 근무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행정 분야의 전문가이자 원로로 공직생활 중 한국영화정책의 흐름과 발전방향’(공저, 집문당 1993) 등 책을 펴냈고, 지방문화육성방안(1980), 공연예술의 해외수출방안(2001), 기술의 발전과 예술영역의 확장(2013)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대학에서 10년 이상 강의를 했다.

 

앞으로의 삶은 그동안 수집했던 책들을 기증하여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며, 책을 집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문화경제학, 문화정책, 예술경영, 예술기행, 왜 나는 바보처럼 책에 갇혀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5권의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또 그동안 모아 놓았던 약 60000여권의 책을 기증하여 복합문화공간에 문화예술전문 도서 박물관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60000여권의 책이라는 숫자가 얼핏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풀어보자면 100살을 사는 한 사람이 하루에 약 두 권의 책을 모아야 하는 분량이다. 예술가별로 기획전을 할 만큼 책이 준비되어 있어 지자체에 기증을 하여 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후손들에게 책이 사용되길 바란다는 소망이다.

 

25년간 살았던 명륜동 집에서 수유리로 이사한 것도 조용한 곳에서 집필을 하며 그간 수집했던 책을 정리하고, 집에서 독서모임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렵게 평생을 모아온 책들이 단순히 도서관처럼 운영되는 것보다 공연도 하고, 세미나도 열리는 공간에 있기를 바랐다.

 

그를 보며 문화예술행정 전문가로 모아 놓은 책은 일반 도서가 아니라 예술 하는 사람이 꼭 가야할 박물관의 보물처럼 활용되는 그날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