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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후(建國後)의 건국(建國) - 윤영무(정외 76) 편집위원
18.05.08 조회수 : 517
건대동문

학교 탓을 하는 바보가 되지 말자. 나보다 훌륭한 동문들이 정말 많고 많지 않은가. 이제라도 나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평화누리 길을 세계적인 순례 길로 만들겠다는 나의 꿈은, 성취되기까지 멀고 험한 길을 얼마동안 더 걸어가야 할 지 모르겠다.

 

70년 중후반에서 80년대 초까지의 내 대학시절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기억으로 차있다. 오히려 외부에 눈을 돌려 다른 대학을 부러워했다. 졸업 후 학력 콤플렉스에다 자격지심까지 겹치면서 학교와 멀어지게 되었다. 일류대학 출신들을 보면 그들은 자부심도 강하고 머리도 좋았다. 해당 분야의 조직에서 리더로서 두각을 나타낼 확률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일류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회생활이나 사업에서도 100% 두각을 나타내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대기업 창업주들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나 중견, 중소기업가들 을 만나보면, 일류대학 출신이 아닐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일류대학을 부러워한 내 생각을 상당부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건국 동문을 만나거나 지상(紙上)에서 볼 때마다-그 모습은 마치 반짝이는 보석이 흙 속에서 빛나는 듯했다-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빛나는 보석이 반짝일 때마다 나는 ~ 좋아. 나름대로 노력했으니 당연한 결과야라고 입으로 중얼댔고, ‘나는 뭐지? 왜 똑같은 동문인데 나는 왜 이 꼴이지? 맨날 학교 탓이나 하고, 너는 도대체 제대로 한 게 뭐야?’ 하고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학 때 사두고 읽지 못했던 서양정치 사상사 원서 번역에 뛰어든 것도 사실은 그런 외부의 자극에다 지금이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국동문이란 또 다른 보석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 일이었다. 지난 해 12월 나는 김포에 있는 문수산성에 올라가다가 산성 입구에서 그곳을 지나가는 경기도평화누리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김포 대명항에서 출발해 DMZ철책선 밖 외곽지역을 따라 연천군 역고드름이란 곳까지 이어 지는 191km 도보코스였다.

 

나는 문득 이 길을 세계인들에게 U-튜브로 소개해 주고, 코스마다 치맥(치킨&맥주) 카페를 열어야겠다. 이 곳에 국내외 석학들을 초빙해 강연을 열고, 그 강연내용을 요약해 전 세계로 중계 방송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지답사를 겸해서, 지난 16일 김포 대명 항을 출발했다. 가벼운 식사를 배낭에 매고, 매주 토요일마다 평균 20km씩 걸어, 지난 3월 말 전 코스를 완주했다. 어느 날은 영하 15도로 내려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걷기는 역사와의 대화였으니까.

 

6.25때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미군이 54,246, 유엔군은 628,833명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 해 알게 되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야 참전국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은혜를 모르는 나라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전국이 어느 나라든 그 나라가 재해를 당했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로 달려가야 한다. 옆구리에 라면박스라도 들고 가서, ‘여러분들 덕분에 이나마 살게 됐습니다.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그 나라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다시 볼 것 같았다.

    

나는 이 평화누리 길을 U-튜브에 소개하면서 전사자들의 이름을 불러줄 것이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683,079잔 치맥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걷기를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이 길을 세계인이 걷는 길로 만들자, 아직은 이 길은 그저 평화의 길이지만 다음 여행은 이 길을 통해 평양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까지 갈 수 있으리라. 아마 지난 2월 말쯤이었다. 평화누리 길을 세계인의 길로 만들어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내게 뜻밖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보석처럼 빛나는 건국 동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내가 경기도관광공사 사장으로 일하게 됐어

, 정말 잘 됐어. 축하~~ 나는 지금 사장님이 관장하는 평화누리 길을 걷고 있거든


상상이 현실이 된다더니, 이런 경우로구나. 평화누리 길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의 사장이 건국 동문이라니앞으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건 우연일까. 기적일까. 막연한 꿈이 이루어질 듯, 난 구세주를 만난 듯 했다. 길 위에 빛나는 보석은 또 있었다. 숭의전(崇義殿,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고려 태조와 7왕을 제사지냈던 사당)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 들렀다가 이 식당 여주인이 MBC강변가요제에서 건대대표로 활약했던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천군 문화원장이기도 한 동문을 나는 같이 온 일행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제 건대 동문이자 후배올시다. 하하하

 

이 뿐만이 아니었다. 평화누리 길을 완주한 뒤, 나는 존경하는 은사님(건대 선배이기도 함)과 학교 앞 일식당에서 점심을 할 기회가 있어, 평화누리 길 운운했는데 은사님이 묻는 것이었다.

 

“6.25때 참전한 미군 장군 아들이 몇 명일 거라고 생각하나?”

 ……

 내 기억으로는 140명이야, 그 중 전사자가 34명이지. 10년 전인가? 미국 국무장관이 반미데모를 하러 온 사람에게 그런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너희 나라 장군 아들은 몇 명이나 참전했냐?’고 또 물었다는 거지. 당시 한국군의 장군 나이가 젊어서 자식이 전쟁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은사님은 평화누리 길과 관련해서 참고하라고, 당신이 월간조선에 연재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쓴, 해방정국의 풍경, 강의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엮은 한국 분단사를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보석은 진짜 가까이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원점의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학교 탓을 하는 바보가 되지 말자. 나보다 훌륭한 동문들이 정말 많고 많지 않은가. 이제 라도 나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 어보자평화누리 길을 세계적인 순례 길로 만들겠다는 나의 꿈은 성취되기 까지 멀고 험한 길을 얼마동안 더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보석처럼 빛나는 동문들이 있는 한, 나는 평화누리 길을 통하여 우리나라가 은혜를 아는 민족임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