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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열리나” - 정천기(국문 82) 건국가족 편집위원
18.06.04 조회수 : 507
건대동문

극동의 한반도는 서구 열강들의 영토 확장 정책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운이 동서남북으로 뻗쳐온 막다른 지점이 자 인류가 풀어야할 현대문명의 온갖 난제들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정상 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 간, 북미 간에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반도에 다가온 봄기운은 뜨거운 여름과 결실의 계절 가을을 향해 전진할 것이라고 믿는다. 절기를 되돌려 겨울로 후퇴한다면 인류사의 비극이 될 것이다.


멀리 온멀다고 말하믄 안 되갔구나?”


지난 4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 장의 이 한마디는 회담장은 물론 텔레 비전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웃음꽃을 활짝 피게 했다. 북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 북관계가 꽁꽁 얼어붙고 전운마저 감돌던 한반도에 이 오고 이 핀다는 소식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남쪽 사람들에게 이북 사투리가 이처럼 친근하고 정겹게 들린 적이 언제 있었던가? 남북 대결 국면에서 조선중앙텔 레비전 등 북한 미디어를 통해 들려온 말들은 그 얼마나 굳어있고 퉁명하고 무시무시했던가!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70여 년간 한반도에 감돌던 냉전 기류를 걷어낼 천우신조의 기회다. 극동의 한반도는 서구 열강들의 영토 확장 정책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운이 동서남북으로 뻗쳐온 막다 른 지점이자 인류가 풀어야할 현대문명의 온갖 난제들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 간, 북미 간에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반도에 다가온 봄기운은 뜨거운 여름과 결실의 계절 가을을 향해 전진할 것이라고 믿는다. 절기를 되돌려 겨울로 후퇴한다면 인류사의 비극이 될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13년 전 남북작가대회 취재차 방북했던 일이 떠오른다. 20006월 김 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이 있고 나서 2004년 남북작가대회 평양 개최가 추진됐 다. 하지만 오랜 단절 뒤에 찾아온 해빙무드여서 마음을 열기까지 갖가지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남북은 여러 차례 실무접촉을 거쳐 2004824~29일 평양과 백두산 일원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 를 열기로 했지만 남측은 행사를 닷새 앞두고 북측 조선작가동맹으로부터 무기한 연기 통보를 받았다.


당시 연합뉴스의 문학담당기자로서 방북취재를 기다리고 있던 필자도 적잖이 당황했고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 다. 행사가 무기한 연기된 것에 대한 남측 작가회의의 해명에 따르면 북측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의 불허’, ‘탈북자 대규모 입국’,‘ 한미합동 군사훈련등이었다.


돌이켜 보면 14년 전 남북작가대회가 무기한 연기됐던 상황은 최근 남북 정상회담 이후 순조로워 보이던 남북 관계가 갑자기 교착 상태를 보인 것과 판박이로 닮았다. 북측은 지난 5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하면서 종업원 집단 탈북 문제한미 공중연합훈련등을 이유로 들었다. 남북작가대회는 우여곡절 끝에 이 듬해인 2005720~25일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당시 남북 문인들이 만나 짧은 기간에 작가로서 직업적 동료의식은 물론 형제적 우애를 확인하면서 금세 호형호제하며 친해지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숙소였던 평양 시내 고려호텔에서 진행된 남측 작가 황석영과 북측 작가 홍석중의 대담에서 황석영이 했던 말 이 필자의 기사에 남아 있다.


“16(2005년 당시 기준) 전 나혼자 북에 와 뒷골목 다니듯이 다녔는데 지금 남쪽 문인 100여 명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왔다. 이제 남북 문학이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인위적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써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말을 누가, 무엇이 갈라놓을 수 있는가. 우리 문학은 하나다. 세월이 흘러 통일이 된 뒤 우리 후세들은 남과 북을 철통같이 갈라놓았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라며 깜짝 놀랄 것이다. 철통같은 분단의 벽 밑으로 소통이 있었던 것이다. 홍석중 형과의 귀한 인연도 바로 그런 소통이다.”


홍석중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이자 북쪽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며, 부친 홍기문은 김 일성대학 교수를 지낸 국어학자이다.


황석영의 말처럼 남북은 몇 십 년간 갈라져서 살아왔지만 같은 말을 사용하고 수천 년 역사를 공유한데다 아 직도 이산가족이 있어서 억지로 갈라 놓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다 보면 언제라 도 형제애를 회복할 수 있는 한 핏줄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 사람과 사람을 맺는 것은 두뇌나 마음이 아니라 피부의 촉감이라고 설파했다.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거창한 구호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 남북 간 피부의 접촉면을 차근차근 늘려나가라고 이 전 장관이 당부하는 것만 같다.


앞길이 마냥 순조롭지 않겠지만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으로 민족화해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