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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과 상허(常虛) 유석창(劉錫昶) 박사를 회고하며 - 소치형(정외 68) 동문
19.03.05 조회수 : 199
건대동문

3·1독립운동 백주년이 다가온 어느 날, 모진 겨울을 견뎌내고 곧 새순을 틔울 나무를 바라보며, 3·1정신과 상허사상을 되짚어 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재 申采浩 선생은 단언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다라고 柳寬順 열사는 절규했다. 이는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死而不朽)’는 역사의 관성을 일러주는 것이다.

 

3·1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미

1919년 기미년 31일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대승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커다란 사건이었다. 3·1독립운동은 이웃 중국 식자층의 심금을 울려 ‘5·4운동을 유발하였고,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운동과 베트남의 민족해방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3·1독립운동은 비폭력 민족해방운동으로서 민족해방운동사상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여는 선도적 견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저항적 민족주의가 발아하여 전개된 당대의 혁명적 거사였다


자주독립의 민족적 각성은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거보에 이르렀고, 민족 언론의 탄생과 민족 사학의 설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자유민주 국가 건설의 기초가 되었기에 우리 헌법은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3·1독립운동은 아시아와 전 세계에 대하여 빛의 세기’, ‘이성의 시대개막을 알린 초유의 거사이기도 했다. 타고르가 예찬했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극동에 위치한 동방의 등불‘100년 간에 걸친 운동을 통해 그 생명력을 지금에까지 이어온 것이다


3·1독립운동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서 명실상부한 민족혁명, 시민혁명, 민주혁명이었고 세계사적으로 선구적 지위에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건국학원의 역사적 관성

건국학원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劉錫昶) 박사는 1900년 출생하여, 191213세 때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길에 올랐다. 고난의 만주 시절에서 힘없는 조국의 비애를 절감했으며, 나라 잃은 슬픔과 배우지 못한 백성의 민원을 몸소 체험한 그는 당시 20세 나이로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상허는 독립에의 강한 열망만큼이나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는데, 후진의 낙후와 선진의 개화가 교류하고 전통성과 근대성이 갈등을 빚는 탈식민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3·1정신과 상허사상의 뿌리가 착근되어 역사적 관성이 관류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웃나라에서 毛澤東(1893-1976)이 일생을 권력투쟁에 투신했다면, 상허는 평생을 육영사업 발전에 헌신했다. 해방 정국에서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했던 상허는 교육과 산업을 통해 나라의 동량을 육성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젊은 인재의 미래를 귀하게 여겨 어찌 장래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來者之不如今也)”라는 신념으로 민중병원을 설립하여 구빈에 앞장섰으며, 건국학원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을 세워 교육입국을 선도하는 역사적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상허의 애국애민에 대한 열망과 교육에 관한 헌신적 의지는 해방 이후 각계에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역사의 관성에 불을 지펴 건국학원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건국 대장정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3·1정신과 상허사상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 관성 견지를 통해 우리의 큰 그림을 그리는 계기로 삼자

상허사상의 정수인 건국학원으로 연을 맺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고, 애민의 마음으로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며 미래의 동량을 위한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후손에게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3·1정신의 자부심을 세계화하는 또 다른 ‘100년 장정에 나서야 한다. 청년세대들이 역사에서 길을 발견하고 공동체의 삶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3·1독립운동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불가능에 도전한 선조들의 위대한 3·1정신을 되새기며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


또한 미래를 위해 한반도 너머 국제사회를 조망하는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오늘의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 공동체가 생존하는 지혜를 필요로 함은 어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는 강대국의 입김에 좌우되는 일이 없도록 100년 전의 교훈을 되새기며, 100년 후의 찬란함을 꿈꿀 때다.


그리고 3·1독립운동사에 항일독립운동사담론과 더불어, 우리민족의 진정한 자주독립적 사유와 역사적 진실 규명,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설계를 연계하는 새 장을 추가하자


시공간을 잇는 역사라는 레일 위에 열차가 달리고 있다. 100년 전, 3·1운동으로 거대한 추진력을 얻은 이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금 백년의, 그 이상의 시간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내년 2020년은 상허(1900-1972)의 탄생 120주년이다.


3·1정신과 상허사상에 흐르는 역사적 관성은 과연 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건학정신인 성신의(誠信義)가 지금의 건국가족들에게 전승되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격동의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역사의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은 닦아야 더 맑아진다.


상허는 일본을 향해서는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라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촉구했고, 우리들에게는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구별할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실천을 당부했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앞둔 오늘, 나라와 민족을 향한 상허의 단심(丹心)이 건국가족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소치형 동문

모교에서 정치학사, 정치학석사,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와 호남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으며 중국 서안(西安) 소재의 서북대학(西北大學)의 방문교수(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남북한과 동북아국제관계(건국대학교출판부), 현대중국 정치외교론(건국대학교출판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