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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세상이라니 - 이현호(교대원) 동문
21.08.17 조회수 : 78
건대동문

 캄캄한 밤에 무언가에 쫓겨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떨기도 하고, 넓고 깊은 강을 건너기도 하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수십 번 이불을 뒤집어썼다 벗었다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없는 세상이라니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운 꿈과 뒤섞여 잠을 못 이루며 밤을 꼬박 새웠던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처음으로 부재와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내가 없는 세상의 상상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이어져 키에르케고르의 책 제목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었다. 사르트르, 카뮈, 니체, 키에르케고르의 책들을 뒤적거렸으나 이해도 안 되고 공감도 답도 얻지 못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속으로 외치면서 불안한 생각을 일축했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이야, 정말 공평하지.’ 하고 초연한 척했던 것 같다. 그렇게 부재를 생각하며 존재를 생각했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가끔 중얼거리며 사춘기 시기를 보냈다.


 결혼한 한 친구는 죽음에 대해 내가 죽을 때, 남은 가족들이 슬퍼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차라리 혼자라면 맘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말했다. 미혼인 다른 친구는 죽음 앞에 있을 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고독하고 슬플 것 같아 두려워.”라고 했다. 남은 가족으로 인해 슬플 것 같다는 사람과 혼자라서 고독한 슬픔을 느낄 것 같다는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른 점이 아이러니 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슬픔과 불안을 준다는 것, 객관적 분량과 등급은 다를지라도 그것만은 당사자들에게 같은 무게로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였다.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엄마는 73세에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홀로 남으실 아버지를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그 후 아버지는 외로이 13년을 더 사시다가 엄마를 따라가셨다. 죽음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아프고 슬프게 한다. 자식들에게 희생적이었던 엄마와의 이별은 세월이 갈수록 칼에 베인 듯 아팠고, 아버지가 가실 때는 홀로 13년간 외로워하셨던 모습으로 내 가슴에 슬픔을 남겼다.

 

 물방울이 머물다가 날아간 흔적이 있다. 이 마른 흔적은 물방울의 존재부재를 동시에 입증하는 실체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흔적이 타인의 기억 속에 각별하게 새겨지기를 바란다. 생의 어느 한 순간이 기억 속에 스스로의 활력으로 남아 있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 ‘추억은 물방울 자체가 아니라 물방울의 흔적과 같은 것이다.

 

 유성호의 산문집 「단정한 기억」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은 존재와 부재에 대한 의문과 불안으로 방황했던 나에게 해답처럼 다가와 깊은 끄덕임과 울림을 주었다. ‘흔적은 언젠가 존재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며 그 존재했던 것에 대한 기억, 추억으로 활력의 근원이 된다는 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엄마는 친구도 없어? 친구도 안 만나러 가고.”


 중학교 다니던 어느 날 저녁, 친구네 집 놀러 간다는 것을 못하게 한 엄마한테 짜증나서 내뱉은 말이다. 엄마는 뭐라고? 내가 누구 때문에?” 소리치실 줄 알았는데 아무 얘기도 안 하시고 대신 눈 속이 빨개지셨다. 엄마가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친구가 없어서 우리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늘 꼭두새벽에 일어나셔서 아버지와 우리 5남매 아침밥을 챙겨주시고 도시락을 싸고 늘 부엌에서 일하시는 엄마,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따끈따끈한 노란 카스테라를 한 솥 만들어 내주셨던 따뜻한 엄마의 미소가 그립다.


 평소 몸이 약하셨던 엄마는 70세부터 많이 아프셨다. 하지만 서울에서 육아와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가끔 찾아뵐 뿐이어서 무척 죄송스러웠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넌 엄마랑 얘기 좀 더 해. 엄마가 너희들 보고 싶어 했단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씀하시며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 등 굽은 어깨로 설거지 자리를 좀처럼 내어주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다.


 “삶이란 항상 때가 있지. 아이 키울 때, 일할 때, 일하지 못할 때…… 그래서 지금 이때가 소중한 거야. 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한때이니 감사히 여기고 즐겁게 최선을 다해야지.”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래. 지금, 이때를 소중히 여기자. 죽음은 필연적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의 질은 완전 달라지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지 않겠어? 부재한다 하여도 세상에 존재했던 의미와 가치관은 기억의 흔적으로 영원히 살아있는 거고. 부재에도 가치 있게 존재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지금의 삶을 소중히 가꾸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