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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으로 세계를 매료시킨 국필(國筆)…건국의 자랑 - 정도준(경제 69) 동문
17.05.17 조회수 : 2,218
건대동문
512~629일 특별전, “소헌의 글씨 사이에서 태초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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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정도준
(경제 69) 동문. 예로부터 명필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라는 뜻을 넘어선다. 선비정신의 정화가 표출된 것이 글씨이기 때문이다. 소헌(紹軒) 정도준 동문은 명필 소리를 넘어 나라의 글씨를 쓰는 국필(國筆) 소리를 듣는다. 그가 쓴 주요 글씨는 국보1호인 남대문 복원을 위한 상량문과 근정전 상량문, 경복궁에 새로 세워진 흥례문 현판 등이다. 정 동문은 512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새로운 글씨세계를 선보이는 전시회를 갖는다.
 
서단에서 활동하는 대표 우수 작가를 선정한 현대작가특선 소헌 정도준 전512일부터 한 달간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열린다. 24개 실 전관이 정도준(경제 69) 동문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예술 나이로 환갑을 맞이한 때에 그동안의 작품 활동을 모아보고 정리하는 의미 있는 전시이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서예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읽는 글씨의 고정관념을 깨고 한글의 자음, 모음을 조형화 한 보는 글씨를 선보인다.
 
글씨는 문학에 예속된 장르처럼 보입니다. 글자를 보면 읽으려고 하지요. 하지만 글씨도 원래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씨가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보자는 생각이 읽는 글씨가 아닌 보는 글씨를 만들어냈지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읽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정 동문이다. 서예가 갖고 있는 텍스트가 지닌 감동은 미술이 갖지 못하는 부분이다. 글에는 옛 철학자와 선현들의 위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그 깊이는 다른 장르에서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작품 내용에 크게 감명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보는 서예를 하고 있지만, 텍스트의 감동도 놓치지 않는 이유이다.
 
서예가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건국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전쟁 후 예술을 하는 것은 생활인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유당 정현복 선생은 정도준 동문을 두고 그놈 참 재주 아깝다하시면서도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국전 출품을 앞둔 정 동문에게 소헌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대를 잇는다는 뜻의 소헌은 아버지의 예술세계를 이음과 예술사에서 한 이음이 되라는 큰 뜻까지 지니고 있다. 국전 9회 입선 끝에 198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그는 가장 오래된 서체인 전서체로 `조춘(早春)`을 써 대상을 차지했다. 국전이 대한민국 미술대전으로 바뀐 첫 해의 일이다.
 
그 수상은 저에게 큰 꿈을 품게 했습니다. 해외에 나갈 수 없던 시절이었으나 대상을 수상하면 무상으로 해외 연수 기회가 주어졌지요. 40여 일간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 세계적인 화가의 걸작을 직접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작품들 앞에서 동양의 예술인 서예가 동서양의 교류로 한 자리에 걸리게 될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텍스트를 완전히 배제한, 현대 추상화와 닮아 있는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미술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던 34살 그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 선생은 면과 면이 맞닿는 곳에서 선이 나왔다.”고 했다. 정 동문은 60년 동안 먹으로서 선을 내고 흰 것으로 여백을 냈다면, 지금은 흰 것으로 선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동국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그의 신작을 두고 필획과 필획 틈 사이로 <태초로부터>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갑작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가 아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먹물이 종이에 물들 듯이 서서히 새로운 시도를 선보여 왔다. 정통 서예의 길을 온전히 지나온 만큼 실력에 대한 질타는 있을 수 없다.
 
정 동문은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모든 작품이 소중하다며 어렵게 탄생한 작품 뿐 아니라 쉽게 나온 작품들 역시 숱한 시도들을 지나온 결과인 만큼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 중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들로는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은 흥례문의 현판과 숭례문의 상량문과 들보가 있다. 현대사에서 중요한 일들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학생들에게는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한다면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하는 그는 원대한 포부를 품을 것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여러 유혹에 휘둘립니다. 그걸 이기고 좀 더 먼 곳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요. 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됩니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달리되,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다 희생하지는 말길 바랍니다.”
 
글씨를 쓰는 일은 육체적으로 상상을 할 수 없이 힘이 든다. 먹의 번짐까지 계산해야하는 작업인 만큼 온 몸의 근육이 굳기 일쑤이다. 그럴 땐 육체가 유혹을 한다. ‘좀 덜 힘들어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 했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도준 동문은 아직 그 유혹을 뿌리치고 있다. 세상에 힘 안 들이고 되는 일은 없다. 모두가 힘들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해 행복하다 말한다. 앞으로도 그 좋아서 하는 일로서 세계적인 명필로 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