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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쿠르트 회장 윤덕병(13회 정외) 동문
13.01.16 조회수 : 3,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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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건강지킴이…발효유 시장 선두주자로 우뚝
보수적 선입견과 달리 열정적이고 창의적 인재 선호
자산운용업 진출 등 ‘새 먹을거리 찾기’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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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한국야쿠르트가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를 내놓은 뒤 많은 한국인의 아침은 가정과 사무실에서 노란 제복을 입고 야쿠르트 병을 건네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기능성 음료가 드물던 1980, 90년대 당시 성장기 자녀를 둔 가정이면 집 현관 앞에 야쿠르트용 천 주머니를 내건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야쿠르트의 매출이 정점에 달했던 1994년 하루 매출량은 740만 병. 전 국민의 20%가량은 야쿠르트를 마신 셈이다. 최근에는 고가(高價) 제품 수요가 늘면서 야쿠르트의 일일 매출량이 250만 병 수준으로 줄었다. 야쿠르트를 발판으로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발효유 시장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야쿠르트의 명성 때문인지 해외에 나가서도 ‘요거트(yogurt)’ 대신 ‘야쿠르트(yakult)’를 찾는 이가 많다.

1969년 설립된 한국야쿠르트의 창업이념은 ‘건강사회 건설’. 창업주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먹고사는 것’이 힘들던 당시 국민이 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기능성 음료를 만드는 데 착안했다. 윤 회장은 1971년 야쿠르트를 내놓으면서 ‘부인(婦人) 판매제도’를 도입했다. 유통 과정에서 쉽게 변질될 수 있는 만큼 유통회사에 판매를 맡기는 것보다 직접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게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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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에는 유통회사의 냉동보관 시설이 좋아지고 주부들의 일자리가 늘면서 야쿠르트 아줌마가 존폐 논란에도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야쿠르트는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방문판매 조직을 더욱 확대했다. 불황 속에서도 야쿠르트 아줌마 특유의 스킨십 마케팅은 빛을 발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야쿠르트와 마찬가지로 윌, 메치니코프, 쿠퍼스 등 발효유 제품만은 시장에 내놓지 않고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직접 배달하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006년 플러스자산운용을 인수하며 자산운용업계에 진출했다. 식품 한길만 걸어온 한국야쿠르트의 행적을 비춰 볼 때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1997년 식혜, 건강식품 등을 생산하는 비락을, 2004년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며 외형 확장에 나서기는 했지만 금융업 진출은 파격이었다.
한국야쿠르트의 히트 상품 가운데는 유산균 발효유 ‘윌’이 첫손에 꼽힌다. 정식 명칭이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인 이 제품은 ‘요구르트’로 분류되던 기존 유산균 발효유의 개념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발효유가 장(腸)에 좋다는 이전의 상식을 깨고 위(胃)에 좋은 발효유로 개발한 것이 성공 이유로 꼽힌다. 위 건강을 위한 발효유라는 새 시장을 개척한 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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