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삼 동문은 인생의 고비마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두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냈다. 며칠 뒤 선생님이 바다 건너 미국의 월드비전 후원자와 연결됐다고 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먹고 사는 일이 급했다. 스무 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월드비전에서 입학금을 지원받아 수업에 나갈 수 있었다.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마지막 학기 등록금도 후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오 동문은 “이대로 주저앉을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어딘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며 “그러다 마음속에 ‘받았으니 돌려줘야 한다’는 결심 하나가 생기더라”고 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월드비전 미국본부에 부탁하며, 1000달러를 빌려주면 한국에서 교수가 되어 이자를 충분히 쳐서 갚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려 등기로 온 수표를 복사해서 늘 서랍에 뒀던 오 동문은 한국에서 돈을 모아 7배로 갚았다. 2000달러는 월드비전본부로 보냈고, 5000달러는 한국월드비전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을 도와달라고 했다.
IMF 이후 아동후원을 시작한 동문은 3명으로 시작해서 6명, 9명, 12명씩 후원 아동을 늘려갔다. 퇴직하면 정기후원도 중단하려고 했는데, 마침 송도고등학교에서 교장을 모집하여 남들 은퇴할 나이에 월급을 받게 됐으니 정기기부를 크게 늘려 60명 정도의 아동을 정기후원했다.
“후원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그게 안 되겠더라고요. 세상을 떠나는 날 후원이 종료되지 않을까요. 인위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형편이 좀 나아지면, 이 고비만 넘기면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는 끝내 기부할 수가 없어요. 누구를 돕는다는 건 지금 자기 형편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바라봐야 가능한 거예요. 지난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형편 따지면서 기부하려고 했으면 못 했을 겁니다. 지금 기부를 고민한다면 형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