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구로병원 시설팀 건축실에서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임홍락 주임기능사는 병원 곳곳의 불편을 찾아내고 이를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바꾸는 시설 전문가다.
미끄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논슬립 테이프 하나를 붙일 때도 재질별 특성을 비교해 제품을 고르고, 보도블록 모양에 맞춰 배치한다. 단순히 고장 난 시설을 원상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와 내원객의 안전, 공간의 기능과 미관까지 함께 고려한다.
기성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요청이 들어오면 직접 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구에 필요한 실험용 구조물부터 냉장고를 옮길 수 있는 바퀴 받침, 병원 행사에 사용하는 목재 프레임까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임홍락 주임기능사는 “시설팀을 병원 진료과에 비유하면 성형외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기계실이 배관과 설비 같은 내부를 담당한다면 우리는 외적인 부분을 다룬다. 환자와 내원객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보기에도 깔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 주임기능사가 공간의 쓰임을 살피고 필요한 형태를 구현하는 감각을 갖게 된 배경에는 공예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그는 건국대 공예학과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목공예를 부전공했다. 대학원에서 금속공예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에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테크니션으로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고대구로병원에 입사한 이후에도 제작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자투리 목재로 새로운 작업법을 시험하며 대학에서 익힌 기본기를 현장에 맞게 확장했다. 그 결과 병원 업무에 필요한 목공 장비와 작업체계도 하나씩 갖춰나갈 수 있었다.
그는 “금속과 나무, 가죽은 재료만 다를 뿐 만드는 원리는 비슷하다”며 “금속공예와 목공예를 오래 했기 때문에 가죽공예 영상을 봤을 때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홍락 주임기능사가 가죽공예를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이 10년을 넘어선 무렵이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생긴 저녁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목공은 작업 공간과 대형 장비가 필요하고 금속공예는 토치와 세척액 등을 사용해야 해 아파트에서 하기 어려웠다. 반면 가죽공예는 작은 공간에서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작업할 수 있었다. 별도의 수업을 듣는 대신 영상을 찾아보고 도구를 하나씩 마련하며 독학으로 시작했다.
첫 작품은 아들을 위해 만든 휴대전화 가방이었다. 아들이 외출할 때마다 메고 다닌 덕분에 가방이 낡을 정도였다. 이후 자녀들의 카드지갑과 아내의 핸드백, 휴대전화 케이스, 벨트, 안경 케이스 등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제작 영역을 넓혔다.
임 주임기능사의 작업은 받을 사람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좋아하는 색과 형태, 휴대전화 기종에 따라 필요한 카드칸과 수납공간을 확인해 크기와 내부 구조를 정한다.
대표적으로 아내에게 선물한 가방은 프라모델 매장에서 본 ‘뉴 건담’의 직선적인 형태와 초록색 눈에서 착안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이미지를 구현해보며 디자인을 구상했다.
그는 “누가 봐도 건담인 가방이 아니라 저만 알아볼 수 있도록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며 “그런 이야기를 작품 안에 담는 것도 만드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재미”라고 웃어 보였다.
또 임홍락 주임기능사가 만든 가죽제품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아래층 어린이에게 빨간 가죽 가방을 만들어 선물하고, 병원 동료들에게는 사원증 케이스 40여 개를 나눠줬다. 약 5년 전에는 신임 교원들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수제 가죽 명함 케이스 25개를 제작해 병원에 전달했다.
특히 평소 화려한 색상의 구두를 즐겨 신던 정희진 전 구로병원장에게는 보라색 가죽으로 감싼 구둣주걱을 만들어 이름까지 새겨 선물했다.
임 주임기능사는 “상대방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맞춰 만들면 특별한 선물이 된다”며 “이름과 서로 다른 가죽 무늬까지 더해지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 된다. 똑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 수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가죽공예는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퇴근 후 가죽을 재단하고 한 땀씩 바느질하는 시간은 하루 동안 쌓인 긴장을 내려놓는 시간이자 집중력과 마감 감각을 가다듬는 과정이다.
가죽 옆면 하나를 완성하려면 마감제를 바르고 문지른 뒤 사포질하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고 완성도를 높이는 습관은 병원에서 시설을 보수하거나 구조물을 설치할 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가죽 소품을 나누며 형성된 관계 역시 업무의 자산이 됐다. 평소 인사만 나누던 직원들이 그가 만든 가방이나 사원증 케이스를 보고 먼저 말을 걸었고, 여러 부서의 불편과 요청사항도 보다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재료를 끝까지 활용하는 것도 그의 작업 방식이다. 가방을 만들고 남은 가죽은 작은 소품과 열쇠고리로 만들고, 병원에서 버려질 판재는 키보드 받침이나 발판으로 다시 활용한다.
새 암병원 공사로 베어지게 된 병원의 오래된 호두나무에서는 가지 하나를 남겨 공구걸이로 만들었다. 나무는 사라지더라도 병원의 시간을 품은 조각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홍락 주임기능사는 이제 자신의 경험을 동료와 후배들에게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원내강사로 지원해 직원들과 무전력 목재 스피커나 가죽 카드지갑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보수 교육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임 주임기능사는 “처음부터 거창한 장비를 마련할 필요 없이 5만원 정도의 입문 도구로 카드지갑이나 열쇠고리부터 만들어보면 된다”며 “늘 긴장과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땀씩 자신의 속도로 완성해가는 시간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고 권했다.
이어 그는 “가죽공예도 그렇고 구로병원도 그렇고 손때가 묻고 에이징되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며 “병원에서 제가 하는 수리도 작품의 연장선이다. 시간이 지나 낡더라도 조금 더 예쁘게 낡도록 손보면서 본업과 취미 모두에서 ‘손으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출처: 의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