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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칼럼] 활활 타오르는 반도체 불빛 아래, 꺼져가는 한국 경제와 중소기업의 운명
26.02.02 조회수 : 129
건대동문
"우리는 지금 ‘반도체에 가려진 성장 착시’ 속에 있다."고  강변하는 필자(맨 좌측)

경제가 위험한 기로에 서 있다. 표면의 숫자만 보면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자동차와 방산은 세계 시장에서 ‘K-제조업’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외면당한 절반의 경제가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만 밝게 비추어진 채 나머지는 어둠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반도체에 가려진 성장 착시’ 속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HBM 수출은 무역수지를 떠받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더 이상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과거 대기업의 호황이 협력사와 내수, 고용으로 이어지던 낙수효과는 이미 작동을 멈췄다. 반도체는 자본과 기술이 극도로 집중된 산업이다. 공장이 풀가동되어도 고용은 늘지 않고, 수출이 최고치를 찍어도 골목상권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혹한기다.

“수출은 사상 최고인데, 내 지갑은 왜 비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지금의 성장은 허상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통 제조업의 구조적 붕괴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중국의 자급률 확대와 저가 공세 앞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전환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와 부동산 침체가 겹치며 건설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건설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다. 이 축이 무너지자 서민의 일자리가 줄고, 소비는 얼어붙으며 내수는 사실상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구조 자체의 지각변동이다. 잘나가는 산업과 도태되는 산업이 극명히 갈리는 ‘K자형 양극화’가 고착화된다면, 한국 경제는 소수 초대기업만 살아남는 기형적 구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소득 격차의 확대, 지역 소멸, 세대 갈등이라는 사회적 균열로 직결된다.

경제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다

이제 정부와 기업은 ‘수출 총액’이라는 숫자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 반도체와 방산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성과가 전통 제조업의 스마트화, 산업 전환, 노동 재교육으로 흘러가도록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만 한다고 경주를 완주할 수는 없다. 이미 지쳐 쓰러진 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퇴로를 열고 체질을 바꾸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수효과 2.0’이다

이는 과거의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를 반복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대기업·국가·플랫폼의 성과가 조건부·구조적으로 중소기업과 지역, 개인에게 이전되도록 설계된 새로운 성장 모델이다. 다시 말해, 낙수효과 2.0은 “큰 물을 붓는 정책”이 아니라 “물이 흘러갈 수밖에 없게 수로를 파는 정책”이다.

예컨대, 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 수주를 통해 중소 바이오벤처, 임상기관, 소재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 역시 대기업의 FAB 투자가 장비·소재·부품(SMK) 중소기업의 매출과 고용 확대로 연결되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ESG, RE100, ESCO 사업은 중소 에너지 기업과 지역 일자리 창출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의 혈관이 다시 뛴다.

지금 마지막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반도체의 불빛만 남고 나머지가 사라진 경제는 결코 강국이 아니다. 진정한 경제 강국은 성장의 과실이 넓게 퍼지고, 산업의 뿌리가 튼튼하며, 국민 다수가 미래를 신뢰할 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그 준비는 지금, 산업의 양극화를 막는 용기 있는 선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