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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호를 바라보며] 지금은 새 생명의 씨앗 만들어내기 위해 단련할 시간
14.11.28 조회수 : 2,561
건대동문
여름철 번성했던 나뭇잎이 초겨울 찬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마치 서쪽하늘을 아름다운 석양빛으로 물들이고 저물어가는 태양처럼 나뭇잎들은 화려한 단풍잎으로 짧은 가을을 채색하고는 처음왔던 자리로 회귀한다.
몇 달 전 이 칼럼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젊은 넋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지키지 못한 기성세대의 못남과 무책임한 모습을 스스로 책망했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겪은 대참사를 낙엽이 지는 계절에 돌이키자니 다시 가슴이 저려온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바닷물에 수장된 열일곱살 청춘들은 계절의 순환에 빗대자면 이제 막 피어나려 했던 꽃봉오리들이다. 암수 꽃술이 서로 사랑해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가 다시 지상에 뿌려져 종을 유지하고 생명을 번성해야 할 문턱에서 그들은 그만 꽃봉오리째 꺾이고 말았다. 사랑으로 낳은 소중한 자식들이 꽃도 펴보지 못하고 숨막혀 죽어간 상황을 견디고 있을 부모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아직도 목이 멘다. 젊은 청춘들의 죽음이 더욱 애통한 것은 그들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고, 한 생명체로서 또 다른 생명체를 유전시키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스러졌기 때무니다. 나뭇잎들이 한여름의 번성기를 누리고 낙엽으로 땅에 회귀하는 것은 자연스런 생명의 순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나무에서 맺은 열매와 씨앗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들이 그 나무의 생명성(DNA)을 이어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생명의 영속(永續)이란 점에서 새로운 열매와 씨앗은 매우 귀중하며, 그 씨앗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애꿎은 목숨을 잃은 젊은 청춘들은 자연스런 생명의 순환을 제지당했고, 세대를 이어갈 씨앗으로서 역할도 못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인명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어린 아이부터 구하는 것이 기본수칙 아니던가! 세월호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가나안 농군학교 김평일 교장이 강조한 '내리 사랑 올리 효도'란 글귀가 떠오른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야말로 물이 흘러내리듯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다. 우리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가진 유전자를 자신이 낳은 새끼가 이어갈 것이란 벅찬 기대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 생명체는 자신의 2세를 통해 영원히 사는 것이며, 그런 이유로 사랑은 그만큼 '본능적'이고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부모는 제 자식을 사랑한다. 다만 자식이 부모를 그 만큼 사랑하고 아끼는지는 의문이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리고 살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 점에서 효도는 본능적이라기보다 이성적인 행위다. 자신을 낳아서 길러준 부모에 대한 사랑에 보답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것은 '내리사랑'의 본능보다 이성적 판단과 실천행위를 요구한다는 얘기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유전자는 아래로만 흐를 뿐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기 때문디ㅏ.
오랜 전통을 이어온 우리 사회의 대가족 제도와 전후 베이비붐 시대는 급속한 고령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마치 여름철 무성했던 잎들이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듯, 시끌벅적했던 농촌 마을 공동체는 산업화에 따라 반세기 이상 진행된 이농(移農)으로 당산나무 고목처럼 메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제는 아기 울음소리조차 끊긴 채 독거노인과 늘어가는 빈집으로 황폐한 유령마을이 돼가는 실정이다. 출산율 저하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해가는 모습은 분명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위기신호다. 자연의 순환으로 보더라도 낙엽이 지는 스산한 초겨울 풍경이자 문명 쇠퇴의 조짐으로 읽힐 상황이다. 이런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생떼같은 젊은 생명마저 지키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다.
지금쯤 스산한 겨울바람이 마지막 남은 잎새를 흙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모교 교정을 휘돌아다닐 것이다. 나무들이 아픔을 딛고 새 생명을 틔워낼 사랑의 씨앗을 만들기 위해 맹추위를 견디며 자신을 단련할 시간이다.

글 : 정천기 건국가족 편집위원

전남 광양 출생. 순천고를 나와 건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합뉴스 기자와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이 회사 기획저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문화 융성위원회 전문위원과 한국 저작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