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KU People
오피니언
들 개 - 윤영무(정외 76) 편집위원
17.10.11 조회수 : 1,375
건대동문

들 개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 C.J 해밀턴

 

나는 지난 30수년을 집개처럼 살았다. 주인에게 교태를 떨었고, 꼬리를 쳤다. 약간의 반항도 해 보았지만 목줄에 묶여 조직이 주는 봉급을 받았다. 그것이 썩은 고깃덩어리인 줄도 모르고 한 달에 한 번씩 또박또박 입금되는 재미가 습관이 되어 입에서 놓으면 죽는 줄만 알았다. 자발적으로 얼마든지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주인보다 더 많은 고깃덩어리를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달아나겠다는 생각은 생각에 그쳤거나 공염불 이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은 매달 어김없이 나오는 고깃덩어리를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내게 봉급을 준 주인을 존경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그런 나는, 남들로부터 그 정도면 됐다는 소리도 들었다. 좋다. 인정한다. 30년 넘게 식구들을 먹여 살렸고, 애들도 키웠으며, 지금 노모를 모시고 사니까. 무엇보다 세상에는 오늘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하다가, 어제 죽은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음에 멀쩡함에 감사한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지금까지 일을 해온 기간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을 수 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은퇴자금은 공개하기가 부끄럽고, 건강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2달에 한 번, 처방약을 받기위해 병원에 가야하는 처지다. 내 나이는 옛날로 치면 얼추 손자손녀를 데리고 여행이나 다녀도 괜찮지만 30대 초반의 두 아들이 아직껏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家長)으로서 의 내 의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다고 이 역할이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없다. 매달 빚쟁이처럼 찾아오는 각종 공과금과 보험료 통지서를 감당하고, 멀리 이국땅에서 고학하는 자 식의 생활비를 일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나자빠지면 우리 집은 파산일 것이 다. 내가 방송사에 다니며 잘 먹고 잘 살았지 않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방송에 나오니 돈도 잘 벌고 꽤 모았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은 내 자신이 경제전 문기자임에도 그 흔한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무관심했다. 또 기자를 하면서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나 의 금전적 결핍을 남 탓으로 돌리자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껏 세금을 탈루 한 적 없이 투명하게 살았다. 세금 내라면 세무서까지 찾아가 상담을 받으면서 성실하게 임했다. 그런데 국가가 지금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듯하다. 세금을 도대체 어디에 쓰고 있는가? 유리거울 속의 집개처럼 살아온 대외적인 결과가 이건가? 싶을 때 나 역시 화가 난다.


북한은 핵실험에다 미사일을 쏴대고, 중국은 한국 알기를 장기판의 졸처럼 여긴다. 6.2535천명 이상의 젊은이의 목숨을 이 나라에 바친 미국에 대해 반미데모를 하면서도 사드배치에 맞서 경제적 횡포를 부리고 우리나라를 속국 정도로 여기는 중국에 대해서는 조용한 게 이상하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차라리 허리케인 피해를 본 미국을 지원하자. 미국인들은 그런 한국을 은혜를 아는 나라라며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 이 땅을 지켜주려 할 것이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여하튼 평생을 봉급쟁이로 살아온 사람이 거의 그렇듯이 나 역시 밖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특별난 재주가 없다. 내 손으로 직접 돈 을 벌어 본 경험도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며 사람들은 나보고 은퇴가 몇 달 남지 않았다, 지금의 주인에게 더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라 했다. 밖에 나와 봤자 있는 돈 까먹기 십상이라면서 말이다.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이 없겠는가. 직장을 조금이라도 더 다닐 수 있도록 사업기획안까지 만들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려면 주인님이 나를 더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애걸복걸하면 주인은 나를 불쌍히 여겨 더 있으라고 봐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몇 가닥 남은 나의 자존심을 굽힐 수 없었다. 언젠가 나도 이름 모를 어느 보신탕집으로 끌려가 죽을 목숨이라면 차라리 광야로 달려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살아가는 들개가 되고 싶었다. 눈 덮인 광야에서 굶어 죽을 지라도 자존을 잃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는 들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다가겠다.


매달, 주인이 주는 썩은 고기 덩어리만 기다리며 침을 흘리는 집개, 나는 집개가 아니라, 광야를 누비는 들개이고 싶다. 들판에서 헤매다 굶어죽는 한 이 있어도 가슴에 용기를 잃지 않고, 인생이란 광대한 싸움터에서 당당하게 싸우고 싶다. 과거는 모두 쓰레기. 좋든 나쁘든, 크던, 작던, 집개로 살았던 모든 기억을 지나간 일로 돌리자, 아무리 달콤하다 할지라도 미래를 믿지 말자. 믿을 건 오로지 살아있는 지금, 너의 오랜 꿈, 1인 미디어, ‘들개 방송을 위 해 뛰어가자, 더 활동하자. 저 넓은 광야에서최고의 방송저널리스트를 위해서 이 한 목숨을 바치자!”


머릿속에 어느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산정(山頂)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 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내가 노래방에만 가면 왜 그 노래만 고집했는지 이제야 그 이 유를 알았다. 썩은 고기만을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 되고 싶었던 거였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아마도 다음 달부터 나는 죽 장 하나에 의지한 윤 삿갓이 되어 개집 을 떠나, 배낭을 메고 들개 방송의 방송저널리스트가 되어 광야를 향해 뛰어 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고, 국민들의 사고(思考)와 삶의 질을 한 단 계 높이기 위해, 지금의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경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사회, 복지 정책은 또 어떻게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민심의 소리를 경청하게 될 것이다. 취업만이 능사가 아닌 창업의 시대.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대신 창업을 택한 젊은이들, 구조조정을 당했다가 창업에 성공한 기업 인, 칠전팔기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 소 상공인, 농어민 등등 중원의 고수들이 전하는, “희망의 경제학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의 출가(出家)를 눈치 채고 집에서 전화가 올까 싶다. “생활비는 어떻게? 큰 애한테 생활비 보내라고 카톡이 왔는데, 공과금 통지서, 각종 보험료

나도 모르겠어. 난 미래를 믿지 않기로 했으니까. 지금까지 할 만큼 했어. 들개 방송을 하다보면 무슨 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 건강하게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나는 비로소 은퇴 뒤에 뭘 해서 돈을 벌지?”하는 고민을 하늘 멀리 풍선 에 띄워 보냈다. 굶어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제일 잘하는, 즐거운 일을 한다면 후회는 없을 터. 그래야 죽을 때 이 정도 살았으면 잘 살고 간 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썩은 고기 덩어리를 입에 물고 살 것인가? 늦었지만 들개처럼 살 것인가? 언제나 그게 문제 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라면 문제고 걱정이라면 걱정인 것은 한 분 뿐인 노모가 지금처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까하는 것이다.

 

| 윤영무 건국가족 편집위원장

정치외교학과 76학번으로 8211MBC 기자로 입사 후, 사회부·경제부 기자와 보도국 뉴스편집2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MBC 서울경인지사의 인천총국장과 뉴 미디어국장, MBC아카데미 이사 등을 거쳐 현재 제너시스BBQ 창업전략연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뉴스데스크 1원의 경제학으로 방송대상을 수상했고,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등의 다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