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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명(축산 66) 동문 - 섣부른 여론몰이로 역사를 결정할 수 없다
17.01.02 조회수 : 1,652
건대동문
지난 12월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개최한 ‘1948년 8월 15일, 한국현대사 상의 의미와 시사점’ 학술회의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내용 중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수립’ 기술과 관련,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이에 김시명(축산 66·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장) 동문은 지금까지 건국이 아닌 정부수립이라고 규정한 역사를 지금에 와서 섣부른 여론을 몰아 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강력 피력한 바 있다. 이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국절에 대한 비판을 담은 김 동문의 컬럼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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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815일이 광복 기념일인 지 건국일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 다. 최근 사드 배치가 사회문제의 표면 으로 등장하면서 건국절 문제가 일시적 으로 잠수하는 형세이나 이 문제가 제 기된 근원이 건국절의 당위성에 있지 않고 친일행위의 이력세탁에 있기 때문 에 이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것 으로 보인다.
 
건국절 문제가 사회 표면으로 드러난 이유가 다음과 같다. 다른 나라들은 다 건국절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건국절 이 없는가? “맞아! 우리나라는 왜 건국 절이 없지?” 그 물음에 대하여 “1919413일이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의 건국을 선언했으니 그날이 건국절이 야라고 하면 간단한 일인데, 그렇게 하 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문 제가 불거졌다고 본다. 바로 이승만 정 부에서 친일파로 단죄되어야 할 사람들 이 반대로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오늘 까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려온 무리들 이다. 이들은 사회적 격랑이 있을 때 마 다 여론을 교묘히 굴절시켜 그들의 치부 를 감추고 이를 선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손바닥 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라 시간이 지나면 이같은 노력은 늘 물거품으로 돌아오곤 했다. 유대인이 금융권력을 쥐고 미국정 부를 뒤에서 조종하듯 친일파들도 그들 이 가진 기득권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건국절 문제도 건국절이 왜 없 지?”하는 대중의 여론을 교묘히 굴절시 켜 “1948815일이 건국절이야라고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역사는 당 시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일이지 후세에 와서 여론으로 이를 바꾸어 나 갈 일은 아니다. 독립과 건국은 같은 개 념이 아니다. 비슷한 의미로 쓰일 때도 있으나 뜻은 서로 다르다. 독립선언과 동시에 건국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비 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건국선언과 독립 이 상당기간 차이가 날 경우 이는 구분 해서 쓰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의 경우 는 독립을 위하여 그 방편의 한가지로 건국을 선언한 것이고 그 선언을 현실 화시키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한 이 후 그 결과 건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 였기 때문에 그 건국선언일이 곧 건국 일이 되는 것이다.
 
자세하게는 191931일 독립선 언을 하고 413일에 대한민국 건국 선언을 하였으며, 이 때의 정부는 임시 정부였다. 이후 계속된 독립투쟁을 통해 1945815일 독립을 쟁취하였고, 미군정 3년을 거쳐 1948년 정식 정부 를 서울에서 수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재건하게 된 것이다. 광복 이전에는 본 국이 일제의 강점 하에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정부를 임시정부 형태로 하고 소 재지를 중국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것 이 바로 1948년 제헌 헌법이 밝힌 대 한민국의 건국사(1919년 대한민국 건 립-1948년 재건)인 것이다.
 
건국선언 후 독립항쟁이 계속된 경우 는 많다. 미국은 177674일 독 립선언일을 건국일로 간주하지만 그 후 7년간 독립전쟁이 계속되었고 178393일 파리 강화조약 후에야 비로소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을 완 비하였다. 또 팔레스타인은 1988년 건 국을 선언했지만 27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1948년 정 부수립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이라 하지 않고 재건이란 단어를 선택하였다. 그때의 판단에 의하여 건국이 아니고 정 부수립이라고 규정한 역사를 지금 와서 여론을 몰아 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보편타당성이 있는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특허의 경우 그 원칙은 일반 적으로 세계인이 모두 공감하고 있는데 이는 최초의 고안자가 그 권리를 갖는다 는 점이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보면 대 한민국의 건국을 먼저 선언한 것은 상 해 임시정부이다. 그 뒤에 누가 몇 번을 선언하였어도 이는 의미가 없다. 그 다 음 선언이 의미를 가지자면 국호를 바 꾸어야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아니고 “1948년에 한국이 건국되었다라고 선 언하였다면 이날이 한국의 건국일이라 고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건국의 주역은 소 수이다. 그러나 이 소수의 성공이 다수 의 이익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동서고 금을 통하여 건국공로자는 건국된 나라 의 권력을 갖는 당위성이 확보되어 왔던 것이다. 섣부른 주장으로 여론을 몰아 역사를 바꾸려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