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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칼럼] 시장은 강요가 아니라 신뢰로 움직인다
26.08.11 조회수 : 29
건대동문

신뢰와 인센티브로 움직인다

최근 코스피 급락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의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세제개편안까지 발표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과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 시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순한 주가 하락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정부가 시장을 바라보는 철학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정부는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내 투자를 늘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방향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방법이다. 시장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신뢰와 인센티브로 움직인다.

 

이번 ISA 개편안은 장기투자를 장려한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연간 납입한도 이월을 제한하고 계약기간을 5년으로 묶겠다는 것은 장기적인 자산 형성을 원하는 국민들의 선택권을 축소하는 정책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존 가입자에게까지 변경된 기준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다. 국가가 약속한 제도를 믿고 투자한 국민들에게 뒤늦게 불리한 조건을 적용한다면 앞으로 어느 국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겠는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예측 가능성과 신뢰다

정부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 자유는 있지만 이미 약속한 혜택을 일방적으로 축소할 권리는 없다. 기존보다 불리한 상품을 제시하면서 기존 혜택까지 박탈하는 정책은 결코 생산적 금융이 아니다. 이번 ISA 세제개편안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옳다.

해외 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국내 투자로 자금을 돌리겠다는 발상 역시 위험하다. 국민의 자산은 정부의 것이 아니다. 국민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국내든 해외든 가장 효율적인 곳에 투자할 자유가 있다. 국내 시장을 살리고 싶다면 해외 투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 아니라 국내 시장의 매력을 높여야 한다. 투자자는 불이익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기회 때문에 움직인다.

최근 코스피 급락의 원인을 일부 레버리지 ETF 문제로만 설명하는 것도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다. 시장은 이미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흔들린다면 이는 단순히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며 기술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기술직 연구인력들이 충분한 보상과 자발적 의사를 전제로 연구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획일적인 규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메가샌드박스법과 같은 과감한 규제 혁신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미래 산업은 속도가 생명이다.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순간 대한민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자본시장을 살리고 경제를 회복시키려 한다면 국민의 선택을 제한하는 정책보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은 강요를 거부하지만 신뢰에는 응답한다.

 

경제는 명령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선택과 예측 가능한 정책,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투자도 살아나고 기업도 성장하며 국가 경제도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선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있도록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살리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길이다.


※ 이 글이 게재된 8월 7일, 이재명 대통령은 논란이 된 ISA 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정부·여당은 계약기간 5년 제한과 미사용 납입한도 이월 폐지 등 투자자들의 우려가 제기된 내용을 재검토하며 제도 보완에 나섰다. 이는 본 칼럼에서 제기한 ISA 개편안의 문제의식과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