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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20년 역사담당교사의 왜곡된 역사관-학생들이불쌍해
13.12.19 조회수 : 2,160
강국희
이런 저런 이야기-29. 전교조-역사담당 현직교사의 역사왜곡, 한심한 수준
[안내말씀]
아래의 글은 현직 고등학교에서20년간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40대 중반의 전교조 교사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글입니다. 그 내용이 어처구니 없어서 커피숍으로 직접 불러내어 3시간 동안 교육/토론했던 생생한 댓글 내용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나라 지키는 심정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실버들이 인터넷을 통한 국민교육 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할 시급한 때임을 느낍니다.
역사는 그 시대의 사회전반에 관한 사실[정치, 경제, 교육, 문화예술, 종교, 산업-농업, 공업, 건축, 무역, 군사] 등을 그대로 정리하면 되는 것이며 무슨 어려운 공식을 풀어야하는 과학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일부 역사 전문가들의 사실왜곡 교육으로 인하여 국민 분열이 심각한 상황 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아래의 글은 고등학교 현직 역사담당 교사 김[ ]수 선생이 자기 학교이름과 자기실명을 공개하면서 당당하게 [이승만에게 보내는 항의편지]라는 제목으로 2013.1.30 어떤 홈페이지에 올린 것입니다[2013.2.18삭제]. 그 편지내용을 여기에 옮겨 놓고 그 아래에 조목 조목 반론을 달았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어린 학생들은 마음 속에 애국심과 대한민국의 긍지를 가질 수 없으며 남북의 분단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2등 국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주시고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교육해야 할 것인지 다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평가할 때는 반드시 북한의 현실과 역사를 동시에 비교평가해야하고 오늘날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북한의 현실과 비교하여 설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종북세력들은 우리 내부의 약점에만 초점을 맞추어 왜곡시키고 있어서 그들을 바르게 계도해 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건물에는 반드시 훌륭한 설계도가 있듯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한 이승만 박사를 바르게 평가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먼저, 전교조 소속의 현직 역사담당 교사의 얄팍한 형편없는 거짓역사관을 이해하시고 대응하시면 한방에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이제 반 대한민국 종북세력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내어 빨강 딱지를 붙이고 반역 활동을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런 일은 일반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삼상오오 단결하여 맞대응하여야 하고 정치인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실버들이 앞장 서야 합니다.
[반론글-강국희 연락처 kauthead@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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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우남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항의 편지
고등학교 역사교사 김[ ]
 
(원래 이 편지글 쓰기는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의 뜻으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취지인 것 같지만, 우리나라 해방 이후 현대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다 보니,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본의 아니게 항의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근현대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나쁜 선례를 보여준 인물에 대한 항의의 글쓰기도 교육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2년 현재 고등학교에서 20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내신 이승만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해방 이후의 현대사를 20년 동안 가르치면서 참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1919년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옳고 그름이 제대로 된 정의가 바로선 나라가 나라를 건설했어야할 제1공화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듣기에 다소 불편하시고 변명하고 싶은 부분도 있겠으나, 대통령께서 불명예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신 지 50년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고, 21세기에 미래 세대들을 가르치면서 우리 역사에 무언가 잘잘못을 따질 필요성이 있기에 당당하게 편지를 올립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보다는 역사의 옳고 그름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바른 행동으로 이끌어야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자 입장에서 몇 말씀을 올림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6.25 때 달랑 편지 한 장으로 대한민국의 군 작전 지휘권을 미국에 넘긴 경우를 되돌아 보건데, 편지라는 형식의 가벼운 글도 쓰는 위치에 따라 엄청난 역사적 결과를 초래함을 인식하며 당신은참 편하게 대통령을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해방된 이후의 당신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해방 이전의 여러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운 게 많으나, 해방 이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역사를 가르치다보니 무언가 당신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특히, 당신이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잘못 놓는 바람에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집은 항상 삐걱거리고 흔들립니다. 더 높은 큰 집을 짓고 싶으면 다시 한 번 주춧돌을 보강하는 공사를 해야 한답니다.
역사에서만약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당신께서 친일파들과 손잡지 않고 제대로 친일청산을 했더라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도록 했더라면, 또 장기집권을 획책하지 않고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면, 한국전쟁에 제대로 대비를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도 훨씬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을 겁니다.
 
당신이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한 헌법 무너뜨리기, 1인 독재 지배체제, 각종 권력 비리 등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잘못은, 이후로도 관행처럼 수십 년을 이어져 당신이 물러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바로잡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정치에 이용하며 키워 놓은 친일파 후손들이 당신을 그렇게 추종하면서, 당신의 과거를 이렇게 다시 들추게끔 당신을 현양하려 하고 있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것입니다. 당신 추종자들은 당신을건국의 아버지로 추종하려하지만, 오히려 많은 역사학자들은 당신을 결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해방된 조국을 당신은 또다시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친일파들은 당신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았다고 하지만, 결국 당신이 주장한반공은 당신 권력을 위한 구호에 불과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들을빨갱이로 몰고, 친일 세력들을 반공주의자로 둔갑시켜 미국의 앞잡이로 만듦으로써 민족정기가 훼손되었습니다.
 
더욱, 몽양 여운형과 고하 송진우 암살에 이은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은 대통령인 당신에게 많은 의문점이 남습니다.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를 당신이 비호해서 호의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안두희도 늙은 몸으로 당신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영원히 당신은 암살자를 비호한 파렴치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4.19혁명 성공 후 기뻐하는 시민들
당신은 또 민족 분단의 책임도 면치 못합니다. 당신은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항상 북진 통일을 외쳤습니다. 정말 북진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야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던 허무맹랑한 과장은 결국 점심은 대전에서 저녁은 부산에서 먹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정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지킬 책임감은 있으셨나요? 제대로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면 전쟁에 제대로 대비를 했어야 했지요. 전쟁을 억제할 정도의 군사력을 가졌어야지요. 결국 김일성에게 오판을 하게 함으로써 동족상잔의 6.25는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말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수 백 만의 군인과 민간인의 죽음은 이후 60여년이 흐른 지금도, 남북 사이의 증오심이 계속되어친북’, ‘종북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념 논쟁을 하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1992년 소련이 붕괴되어 공산주의가 사실상 지구상에서 의미 없게 돼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또 당신은 전쟁 중에는 한강다리 폭파로 수많은 피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수 천 명을 죽게 한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등 차마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역겨운 사건들에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또 어떠했을까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 3.15 부정선거 등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세계인들에게 낯부끄러운 짓들을 너무나 쉽게 했지요. 사사건건 문제 제기를 하면 빨갱이 소행 운운 하면서 민주주의를 짓밟았지요. 3.15 부정선거를 몰랐다고 발뺌하셨는데 정말 모르셨나요? 모르셨다면 치매에 걸린 80대 노인이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지요?
죽산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 사건은 꼭 그렇게 했어야했나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되는평화통일이 당신의북진통일에 맞지 않는다고 사법 살인을 저지르셨네요. 당신은 평화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인물이었네요.
 
정리해보니 당신은 역사적으로 정말 잘 한 게 하나도 없는 국가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부끄러운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끼친 당신의 해악 중에 최악은 물론 3.15 부정선거와 독재이지만, 저는 민족정기 차원에서 친일 세력을 두둔했다는 것이 최고로 나쁜 것이었다고 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매국 행위자들도 벌 받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세상에서는 어떠한 잘못도 처벌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망명지 하와이에서 병석에 누운 이승만
결국, 지금 21세기의 세계 독재자들의 말로와 비교해 보면 하와이로 망명하여 쓸쓸하게 최후를 맞은 것도 당신에게는 행운인겁니다.
역사에는 준엄하게 다 기록됩니다. 역사가 바로선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의 잘못들이 철저하게 밝혀지고, 기록되고, 후손들에게 가르쳐질 것입니다. 저승에서나마 부끄러움을 부끄럽게 여기시길 기원합니다.
 
2012 11월 어느 날 고등학교<한국사>의 현대 부분을 20년째 가르치는
대한민국의 한 역사교사 올림
[ ]
고등학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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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선생의 글에 대한 반론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적지 연구회의 홈페이지[cafe.daum.net/kpgs27]에 실려있던 고등학교 역사담당 교사의 2013.1.30 글을 읽고[2012.2.18현재 삭제됨] 우리역사 인식의 문제가 매우 긴급함을 느낍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문제에 대한 정반대의 인식을 하고 있는 역사전문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들 사이에서 영향을 받은 학생들, 젊은이들,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분열되어 있음은 단순히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핑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될 국가 존립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의 글에서 몇가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반론을 제기합니다.
 
1.김일성의 6.25남침 전쟁시에 대한민국의 군작전지휘권을 미국에 넘긴 것을 비난했는데
반론-김일성의 6.25남침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군의 파병을 결의하여 16개국이 참전했습니다. 우리군대와 유엔군 16개국이 단일 지휘체제를 구축하여 김일성 남침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시는 것 같군요. 그것이 원통해서 하시는 말씀이지요. 하지만 대전협정[對戰協定]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1950.10.1 우리 국군 참모총장 정일권 장군에게 북진을 명령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만약 6.25전쟁 당시 무기, 군사조직 등 군사체제가 불비하고 전쟁 수행 능력도 전혀 없는 한국군이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한을 상대로 전쟁 작전권을 행사했다면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이 어떻게 도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나 영국의 연합군이 대한민국만 못해서 전시 작전권을 미국에 넘겼겠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주 국방을 국가의 자존심으로 생각하고 전시작전권을 주장했다면 대한민국은 아마도 세계사에서 자취도 없이 영원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국군의 능력을 충분히 파악하여 훌륭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군작전권을 미군 맥아더사령부에 넘겨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지요
 
당시 북한의 군사력이 월등히 강력한 상태였으므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작전권을 유엔군에 넘긴 것이며 그래서 북한공산군을 38선까지 밀어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 그 당시 우리 군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하다가 여기에 유엔참전 16개국이 참여하게 되면 의사소통과 작전수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승만은 과감하게 작전권을 맥아더에게 넘겨서 성공적으로 수행했지요. 북괴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진격해 내려왔을 때 세계최고의 미국 맥아더 사령관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 성공함으로써 독안의 쥐 신세가 된 공산군의 보급로가 차단되어 전멸하였고 928일 서울이 수복되고 대한민국을 사수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승만의 놀라운 판단력에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했는데 왜 자랑스럽게 생각되지 않으신가요.
 
2. 대한민국의 시작이 잘못되었고 주춧돌을 잘 못 놓았으니 다시 주춧돌을 보강해야 한다고 했는데 대하여
반론-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해방직후 남은 미국, 북은 소련의 지배하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어떤 국가의 주춧돌을 놓았어야 했는지요. 그리고 보강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강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1948.4.28-29북조선 헌법통과, 이것은 1936년 스탈린이 제정한 소비에트헌법에 기초한 것이며 소련의 위성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대한민국의 헌법은 1948.5.29제헌국회[초대국회의장 이승만]에서 제정되었지요. 비로소 대한민국은 자유평등사상, 자유민주공화국,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성공하였습니다.
 
우리민족의 8.15해방은 일제가 포츠담선언을 수용하여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결과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와 세계평화기구로 유엔이 창설되었습니다. 따라서 1947.1.14 유엔총회가 한국문제의 해결은 한국민의 자결에 맡긴다는 결의에 따라서 1948.5.10 유엔한국위원단의 관리하에 제헌의원을 선출하고 헌법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남북분단은 소련군 사령부와 김일성이 유엔한국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민족문제의 해결을 몇사람의 협상으로 결정하자는 것은 반민주적 사고방식이지요.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나라로써 김일성조선왕조국이 못된 것이 그렇게도 원통하단 말입니까?
 
이승만의 통일론은 처음에는 <선통일 후정부수립>이었습니다. 1945.10.19 “우리에게 급한 문제는 잃었던 3천리 강산을 찾는 것이 유일한 것이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통일뿐이다. 여하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잃은 땅을 찾는 일에 전력할 뿐이다라고 원론적인 통일론을 제시했습니다. -소공동위원회가 열리고 있던 1946. 4.8 기자회견에서는 “38선을 철폐하여 다시 통일을 회복하도록 이 회의에서 결정되기를 바란다고 발언하여<선통일 후정부수립>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 2차 회의가 결열되자, 이승만의 통일론은 <선 정부수립, 후 통일>이라는 단계적 통일론으로 전환됩니다. 이승만이 총선거를 주장한 것은 남북을 영영 나누자는 것이 아니며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세워서 국제상에 발언권을 얻어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촉성할 門路를 열자는 것이었으며 만일 이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까지 말 했지마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그 당시 국제정세에 누구보다도 밝았으며 청년시절에 배재학당 공부, 미국에서 외교정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독립 후의 국가를 건설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였습니다.
 
3. 친일청산을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독립운동가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도록 했으면 좋았다, 장기집권을 획책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면 좋았다, 한국전쟁에 대비를 못해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대하여
반론-김일성[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7.3.7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토지무상몰수, 무상분배, 계급혁명추진을 했지만 초대내각 18명중에서 친일분자17명을 포함시켰으며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았고 공산주의 정부수립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친일파로 처형했지요. 북한이 친일청산을 잘 했다는 것은 완전 거짓이며 허구입니다.
김일성 - 소련군 소령 출신! 독립운동과는 전혀 무관
김영주 - 북한 부주석, 북한내 당시 서열2, 김일성 친동생 (일제 헌병의 통역관, 보조원)
장헌근 -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 (일제 중추원 참의)
강양욱 -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 남저선 로동당 서열2 (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일제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정국은 -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 친일밀정, 즉 일본간첩 출신)
김정제 - 북한 보위성 부상(일제하 양주군수)
조일명 -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 북한 부수상 (일제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활 - 북한 인민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 -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 -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최승희 - 유명 무용수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 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 소위)
박팔양 -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문화부장)
한낙규 - 북한 김일성대 교수(일제하 검찰총장)
정준택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대 복무)
한희진-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 당시 함흥철도공사 국장)
 
그러나 이승만은 독립운동공로자 중심으로 내각을 조직하였고[아래내각명단참조] 친일세력 청산을 위하여 1948.9.22 반민족행위특별법 법령제3호를 제정하여 법에 의한 절차를 거쳐서 청산하였지요. 법률에 근거하여 반민족행위682건을 조사하였고 영장발부408, 기소221, 재판종결38, 처벌12건을 소추 처리하였지요. 이승만의 토지 개혁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농민들이 만족하였고 그래서 빨갱이들이 농민들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청산작업이 진행 중에 김일성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대한민국 수호가 더 시급한 상황이 되었기에 친일청산은 연기되고 말았지요. 친일 청산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김일성의 남침때문이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북한보다는 남한이 제대로 잘 한 것이지요. 친일에서 최대 공로자는 김일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왜냐하면 6.25남침으로 인하여 일본에서는 전쟁물자를 공급하면서 재무장, 엄청난 경제발전을 하였거든요.
 
장기집권 획책, 3.15부정선거는 분명히 잘못이지요. 다만 생각해야 할 것은 이승만정부의 국가설계가 자유민주주의[교육진흥, 언론자유, 종교자유---]에 기초하여 매우 잘 되었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의 민주주의 정신이 살아나서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성취한 것이며 이러한 국민교육의 공로는 이승만의 치적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승만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확인하고 즉시 하야, 그 다음날 대통령 전용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화장으로 떠난 분이며 축재를 하지 않았고 그런 분을 독재자라고만 매도하는 것은 그 시대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나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