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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 파니 최고 전문가 꿈 이뤄졌어요” 슈거크래프터 이종열(농대원) 동문
13.01.16 조회수 : 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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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슈거크래프트(Sugarcraft)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누구나 한 번쯤은 슈거크래프트로 만들어진 장식품이나 케이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혼식이나 회사 창립기념식, 회갑 잔치, 돌잔치, 리셉션 등 다양한 파티와 연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케이크나 화려한 장식품들 중 상당수가 바로 슈거크래프트로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파티 문화가 일반화돼 있는 영국 등에서는 슈거크래프트를 아예 마트에서 팔기도 할 정도죠.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은 곳에서 슈거크래프트를 접할 수 있는 편이에요.” 슈거크래프트는 설탕을 곱게 빻아 체로 거른 후 물엿과 섞은 뒤 반죽해 식용색소 등을 넣어 만드는 설탕 공예를 말한다.
  
“설탕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금방 녹아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실제로 외국에서는 만들어진 지 70년이 넘는 작품들이 수천만 원대의 고가에 거래되기도 할 정도죠.”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화려한 슈거케이크 등을 선보이고 에비뉴엘 개관 2주년 기념, 갤러리아 명품관, 크리스찬 디올 컬렉션 론칭 기념 파티 등에 슈거크래프트 작품을 선보여 온 이종열 씨는 여러 대학에서 슈거크래프트를 강의하고 한국 최초로 슈거크래프트 전문 관인 아카데미 ‘슈가아뜨리에’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슈거크래프터(Sugarcrafter: 설탕공예가)다.
  
그녀가 슈거크래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1997년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청춘을 다 보낸 40대의 평범한 주부였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빵 만드는 일이나 음식 만드는 일이 좋았지만,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처음 슈거크래프트를 접하게 된 것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좀더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먹여 보고 싶은 욕심에 경기대 부설 사회교육원에서 서양 요리와 제과제빵을 공부하던 때였다.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이렇게 예쁜 케이크가 있나 싶어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과자나 케이크도 예쁘고 아기자기하지만 슈거크래프트는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딱 한 분만이 슈거크래프트를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배우다 보니 제가 더 잘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직접 외국 서적을 구입, 또한 인터넷을 뒤져가며 독학하기 시작했다. 좀더 실력을 다지기 위해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으로 여러 차례 단기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2001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슈거크래프트 전시회를 열면서 대중들에게 슈거크래프트를 알리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력이 늘어나고 그 실력을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비례해 남편이나 가족의 불만도 조금씩 커져갔다.
  
“공부하랴, 전시회 준비하랴 가정주부가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하지만 2004년, 국제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죠.(웃음)”
  
국제대회서 수상하면서 자신감 얻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참가한 대회였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일종의 슈거크래프트 올림픽과 같은 대회예요. 그만큼 수상에 대한 기대 없이 오로지 참가에만 목적을 두고 준비했었죠.” 대회를 위해 그녀가 준비한 건 생화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질감의 붉은 장미 장식 2단 웨딩케이크와 우리나라 전통 족두리를 재현한 머리장식, 건과물의 느낌을 살린 케이크 등의 3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비로소 만들어낸 이 작품들은 대회에서 이단 케이크 부문, 머리장식 부문, 리치 프루츠 부문에서 각각 금·은·동상을 수상하며 그녀에게 자신감을 안겨줬다.
  
“처음 참가한 제가 금·은·동상을 차지했으니 모두 놀라더군요. 더욱이 금상을 탄 장미 장식 2단 케이크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어요.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슈거크래프트로 장미를 표현하는데 대부분 일정 틀이나 몰드를 사용하는데 비해 저는 몰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일일이 빚어 장미 특유의 색감과 질감이 살아있는 꽃잎을 표현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대회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이 직접 저를 불러내 표현 기법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녀의 이름을 따 ‘리 로즈(Lee rose)’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기법은 평생을 슈거크래프트 전문가로 자처하고 살아온 이들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솜씨였던 것이다. 2008년에는 2년마다 열리는 영국호텔림피아 국제대회에서 슈거플라워 부문과 축하 케이크 부문에서 각각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으며 그해 11월에는 영국 케이크 인터내셔널 국제대회에서 미니어처 부문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 모두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 실적이었다. “영국호텔림피아 국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은 2004년의 장미 장식 못지않게 화제를 모았어요. 튼튼한 가죽 질감을 그대로 표현해 낸 슈트케이스 모양의 장식품이었는데, 대회가 끝나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독특하고 세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 하나다.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죠. 질감이나 색감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질감이나 색감이 어떤 모습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와요. 나머지는 테크닉을 접목해 직접 만들어 보는 거죠.”
  
창작의 희열보다 더 큰 기쁨
  
화려한 수상 실적이 잇따르면서 그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일반인들 사이에 슈거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그녀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하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그녀에게서 배우고 싶다는 이들은 더욱 많아졌다.
  
결국 이 대표는 여러 대학에서 슈거크래프트를 강의한 데 그치지 않고 2007년에는 한국 최초의 슈거크래프트 전문 관인 아카데미 ‘슈가아뜨리에’를 열었다. 그녀 자신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며 익힌 노하우와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뒤를 이을 슈거크래프터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수업 방식이 좀 엄한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주로 그러더군요. 슈거크래프트를 시작하면 두 번 운다고. 배울 때는 저한테 혼나서 울고, 배우고 나서는 여기저기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기쁨에 울게 된다고요.(웃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인 만큼 국내는 물론이고 멀리에서도 그녀에게서 슈거크래프트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는 워싱턴·시카고·뉴욕 등에서 일부러 한국까지 찾아와 수업을 듣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제게서 배운 제자들이 전문가가 되어 자기만의 공방을 운영하거나 호텔 등지에 취업해 맹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품을 완성한 뒤의 희열 못지않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보다 많은 슈거크래프트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약력 : 1954년생. 건국대 농축대학원 식품공학 석사. 영국 BSG 스킬스쿨 수료. 독일 제빵연구소 베이크 마크 연수. 2008년 영국 호텔림피아 국제대회 금상. 2008년 영국 케이크 인터내셔널 미니어처 부문 금상 등 수상. 영국 브리티시 슈거크래프트 길드 회원(현). 혜전대 제과제빵과 겸임교수(현). 슈가아뜨리에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