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NEWS
KU People
동문 NEWS
씨트링 회장 박용언(무역 76) 동문
13.05.02 조회수 : 4,827
kusports
박용언.jpg

“고향은 나의 모든 것을 형성해 준 원류(原流)와도 같은 곳입니다. 고향에서 생활했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추억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내 삶의 중심에는 항상 강릉과 강원도가 있습니다.”

회사 설립 5년만에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한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현재는 수출 5000만 달러 이상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회사의 CEO.

주식회사 씨트링 박용언(60) 회장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사업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있는 강릉출신 박용언 회장.

그의 자택 주변인 서울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지난 26일 성공한 기업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 고향에 대한 소회와 고향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바람에 대해 들어봤다.

만남의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박 회장의 첫 인상은 ‘딱딱한’ 여느 회사의 중견간부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는 부드러웠고 너그러웠다.

박 회장은 사실 “나는 인터뷰 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인터뷰 요청을 몇번에 걸쳐 정중히 거절했다.

취재기자를 만난 박 회장의 첫 마디 또한 “난 지극히 평범함 사람이에요. 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되는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어렵사리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그는 첫인상에서 풍겼던 ‘딱딱한’ 사람이 아니었다.

겸손함이 몸에 배어있는 ‘순수한 강원도 토박이’ 그 자체였다.

고향 강릉에 대한 느낌을 묻자 첫 마디부터 그랬다.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이 묻어났다.

“내 고향 강릉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의 기반을 다져준 곳이에요. 비록 별 볼일 없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고향에서 생활한 추억이 없으면 현재의 내 모습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박 회장은 그러면서 유년시절로 돌아가 여름에는 남대천과 바다로, 겨울에는 눈을 벗삼아 산, 들, 바다를 뛰어놀던 어린 시절 추억을 전해줬다.

그는 “그 추억이 그 어떤 유산보다도 내겐 더 값집니다. 그런 곳에서 나를 키워준 부모님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함을 느끼고 있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진해지는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 회장은 강릉에서 태어나 경포중과 강릉고를 거쳐 건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에는 국제민간외교협회(P.T.P) 한국본부 5대 전국대학생 연합회장을 역임했고, 대학 졸업을 앞둔 1978년 영풍 해외영업부에 입사했다. 
   
 
입사 10년후, 그는 첫 직장에 사표를 내고 코리아니토쿠를 설립했다.

이후에는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 부품을 제조하는 도우시스템과 중국 웨이하이(威海) 도우전자 유한공사 회장, 최첨단 영상보안기기(DVR)를 제조하는 주식회사 씨트링을 잇따라 설립했다.

씨트링은 2010년 중소기업청과 기업은행으로부터 동시에 ‘수출 강소기업’으로 선정됐으며 2010년 제47회 무역의 날 ‘1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현재는 수출 5000만 달러 이상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박용언 회장의 이력에는 ‘중소기업을 창업해 줄곧 성공신화를 써 내려간 CEO’란 별칭이 늘 따라 붙는다.

그러나 그는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는 대신 ‘시작’이라는 단어가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고, 그와 같이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고향에서 온다는 말을 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만 나 자신에 대해 애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지면서 고향에 대해 애정을 쏟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동이죠. 고향은 항상 나보다 우선시되는 곳이에요. 항상 먼저 마음을 쓰고 싶은 곳이 고향이죠.”

특히 강릉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은 그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마다 힘을 불어넣는 활력소였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도 항상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새로운 변화에 얼마든지 적응해서 할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새로운 기회를 항상 탐색하고 있죠. ‘난 왜 이런 마음이 들까’하고 자문해 보니 ‘어릴적 강원도의 순수한 자연속에서 갇히지 않고 컸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구나’ 싶더라고요. 갇혀 있는 삶은 스스로를 옥죄게 마련이잖아요.”

그의 성공 뒤에는 항상 고향 강릉과 강원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향에 대한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사실, 지금 운영 중인 기업을 당초에는 강릉에 있는 수출산업단지로 옮겨 경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죠. 그런데 전자업종이다 보니 연계할 수 있을게 없어서 이전에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박 회장은 몇 번의 공장이전 시도 끝에 결국 포기하고 사업 확장을 중국에서 하게 됐다.

현재 운영 중인 중국 웨이하이 도우전자 유한공사는 이 같은 연유로 생겨나게 됐다.

박 회장은 경기도 군포시민들에게는 ‘착한’기업인으로 통한다.

군포시경영인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포 e-비즈니스 고교 재학생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오랜 기간 수학여행 경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 같은 관심과 지원은 학창시절 수학여행이 한 청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또 군포 e-비즈니스 고교 학생들을 위한 멘토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사회진출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명절과 연말이 되면 군포시 가야복지관에 생활필수품을 지원한다.

박 회장은 이제 고향 강릉과 강원도를 위한 봉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강릉고 총동문회장을 맡은 이유도 강릉과 강원도를 위한 첫 단추 꿰는 일을 모교 발전을 위한 일에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경 강릉고 동문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모교 동문들이 정계, 재계, 관계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사기업, 외국기업까지 상당히 많이 진출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결고리’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동문들의 결속력을 더 단단히 다지고 싶었고, 결속력을 바탕으로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문회장직을 맡게 됐죠. 그런 활동이 모교는 물론 지역사회 후배들의 발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요.”

박 회장은 구체적으로 총동문회관 건립과 후배들을 위한 동문교육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습능력향상자문위원회 구성 등을 추진 중이다.

그는 총동문회장 취임과 동시에 1억원을 강릉고 장학재단에 기탁한 것은 강릉고 발전뿐만 아니라 강릉과 강원도 발전을 위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박 회장은 나아가 강릉 지역사회 청소년들의 발전과 역량 강화를 위해 고향을 빛낸 과학자 및 영화감독 등과 함께하는 포럼도 개최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나보다 더 능력있는 모교 출신 박영화 변호사와 같은 우리 후배님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해 줬으면 좋겠고, 그런 후배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는 모교뿐만 아니라 강릉 지역사회, 나아가 강원도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박 회장은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고향 강릉과 강원도’라는 말을 입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뷰 시작할 때 했던 말을 인터뷰 말미에 또 한 번 강조했다.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강원도 사람 10명 중 9명은 나처럼 활동하고 있어요. 강원도 사람만큼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