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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서의 가족 - 김진기(국문 82?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문
13.06.17 조회수 : 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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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년대 초부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1990년대 초라고 의식적으로 못을 박은 이유는 그때로부터 우리네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를 휘감았던 중심 화두는 평생직장 개념의 전망이었다. 과연 평생직장 개념이 앞으로도 유지될까, 아니면 무너지고 말 것인가 하는 불안이 그 당시를 지배했던 지배적인 시대 흐름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직장이란 한 개인에게 있어 가족만큼이나 절대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평생직장 개념은 확실하게 사라져 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 혹 있더라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겉모습일 뿐 그들의 내면 속에는 이 다음 기착지는 어디여야 할까 하는 모색만이 잔뜩 똬리를 틀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식이 있더라도 자신의 사적인 계획이 있으면 쉽게 동참하지 않는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하나의 '벽'이다. 이런 일은 단지 직장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요소요소에 걸쳐 비일비재한 현상으로 자리매김됐다. 설마 했던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그러한 흐름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한국 사회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척박한 나라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족은 국가가 떠맡아야 할 일도 기꺼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의료비·국민연금·교육비·노후보장 등 웬만하면 국가가 떠맡아야 할 일들을 온통 감내하느라 가장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러니 가장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상황을 누누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마치 변명처럼 느껴질 때 그가 겪어야 할 열패감이란 참으로 참혹한 것이다. 직장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자식들도 이제 아버지의 변명, 흐트러짐을 예전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만큼 가족이 그 필연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뿔뿔이 분열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혼율 급등은 이제 가족이 예전의 안정감과 따스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됐다.
 
예전의 안정감과 따스함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벽이다. 자식도 성장하면 벽이고 마누라 또한 벽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지만 아내라 해도 다를 게 없다. 그 역시 남편이 하나의 벽으로 인식될 것이다. 벽이란 사회적인 개념이지 가족적인 따스함의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이제 사회가 되었다는 말인가. 최근의 부부강간죄 합헌은 가족도 사회의 하나라는 것을 극명하게 표현해 주었다.
 
최인훈은 그의 출세작 '광장'에서 이미 이렇게 말했다.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사회성(광장)이 죽고 개인의 이기심(밀실)만 잔인하게 살아남은 것이 가족주의라는 것이다. 그 가족주의를 '벽'인 아내와 자식들이 밀어내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가족과 사회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가족이야말로 사랑과 배려, 대화와 타협이라는 아름다운 사회 건설의 가장 근원적인 사회적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제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