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컬렉터, 미술품 소통케하는 미술가의 수요자이자 동반자
소암기념관의 기획전 기존 서예관 인식 제고시키는 기회
아름다움을 아는 컬렉터
렘브란트는 명화를 수집하는 데 열중하다보니 만년에 가계(家計)가 흔들릴 정도로 힘들게 되었지만 고전미를 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피카소는 아프리카 민간미술품을 수집한 덕택에 자신의 큐비즘 미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컬렉션은 컬렉터 자신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거나 미학 연구를 위해서 그 효용성이 있는 데, 때로 컬렉션은 안목이나 용도에 따라서 스스로에게 이바지 할 수도 반대로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예술이 사회와 자유롭게 호흡하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를 넘어서는 어떤 매개자가 필요한데 그 매개자는 예술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시장원리의 기초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간에서 예술품 수요자를 컬렉터(Collector)라고 부른다. 컬렉터는 미술품을 소통케 하는 유통자이기도 하다. 컬렉터에도 유형이 있지만 대개의 컬렉터들은 예술품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아 금고에 깊이 숨겨두거나 집에 두고 혼자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이들은 미술관 건립을 목표로 삼아 단계적인 계획 아래 미술품을 수집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도 한다. 분명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컬렉터는 미술품을 투기로 삼거나 혼자 자족하면서 즐기는 금고형 컬렉터는 아니다.
비록 자신의 재화로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컬렉터가 바람직한 컬렉터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은 인생에 있어서 독특한 삶의 행복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를 창출하고, 또 정서를 배양하고 감각을 키워주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성찰하게 하며, 또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폭넓게 열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신적이고 형상적인 인식 활동이다.
그러기에 예술은 사회의 산물이지만 다시 그 사회에 대해 정신적으로 이바지하고 영혼을 살찌게 한다. 여기에서 예술의 유용성(有用性)이 나오게 되는 데 좋은 예술가가 나올 수 있는 토대는 한 사회의 지적(知的)·교양적 수준과 무관하지가 않다.
제주는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연환경과 굿, 신화, 역사와 같은 인문자원이 많다. 이것들은 미술적 토양으로 매우 훌륭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데 안타깝게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미술가는 드물다.
제주는 미술시장 또한 제도적으로 형성돼 있지 않아 대개의 미술가들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지역은 미술가들이 겸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전업화가들은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제도를 넘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컬렉터의 역할이다.
컬렉터는 미술품 수요를 창출하고 창작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지역 미술가 입장에서는 이런 컬렉터의 역할이 가뭄의 단비와도 같이 미술가들의 경제적인 토양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화랑 중심의 미술시장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못하는 지역으로선 컬렉터의 역할이야말로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한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대중과 공감하는 '문희중 컬렉션'
금번 소암기념관에서 기획한 <한경(漢耕) 유예(游藝)>전은 문희중 컬렉션의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문희중 컬렉션이 특이한 것은 미술관 건립이나 개인의 감상 목적이 있어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예술과 사람을 좋아한 까닭이다.
물론 이런 성품을 확대해서 보면 불교적 의미의 보시(報施)일 수도 있고, 그것을 축소해서 보면 사회적 관계로서의우애의 행동일 수도 있다.
또 문희중 컬렉션의 가계(家系)는 이미 화원(畵員)과 묵객(墨客)과의 교유의 폭이 넓어 대를 이어 소장해 온 명품들이 많다. 그런 문화적 환경이 지금의 문희중 컬렉션으로 거듭난 것이고, 그가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게 된 이유이다.
이번 소암기념관 기획전은 문희중 컬렉션 중 동양화와 서예가 주종을 이루는데 소암기념관의 성격상 문기(文氣)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조선시대 유명한 선비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청사(晴沙) 김재로(金在魯) 등의 귀중한 간찰(簡札)이 포함돼 있다. 이 간찰집은 조선 600년 동안 내로라하는 선비들의 간찰을 천(天)·지(地)·인(人) 세권으로 묶은 문화재급 자료이다. 이 간찰집과 소암 작품 3점, 김택화의 수묵 작품 1점을 소암기념관에 기증한다고 하니 40여 년 지나온 문희중 컬렉션의 아름다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한경(漢耕) 유예(游藝)>전에 출품된 작가를 살펴보면, 지역 출신 작가로는 현중화, 김광추, 양인옥, 변시지, 문기선, 김택화, 이영진, 강부언, 고희경 등이며, 육지 작가로는 강세황, 허련, 허백련, 이상범, 이한복, 노수현, 허건, 허달재, 이서우, 나상목, 김옥진, 박생광, 김영기, 오승우, 이왈종, 이만익, 노숙자, 정하경, 박성은, 사석원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 한국 화단의 쟁쟁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고 이들 작품 46점이 출품되었다.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는 한국 서예의 대가 닮게 호방하면서도 빠른 필체로 유명하다. <희노애락자중절(喜怒哀樂自中節)>등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기획전 타이틀 '유예(游藝)'는 소암의 글에서 취했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정조가 아꼈던 걸출한 인물로 김홍도(金弘道)와 같은 도화서 화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당대의 쟁쟁한 화가들의 화제(畵題)를 많이 쓴 것도 그의 자랑이다. 그는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으며, 서양화법을 도입하는데 기여한 선비화가로 벼슬은 한성 판윤에 이르렀다.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은 추사의 남종화풍 계보를 잇는 수제자로 호남 화단의 주역이기도 하다. 오늘날 호남화단이 한국 남종화의 종주(宗主)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소치가 있었던 때문이고, 호남 제일의 화가 집안이 된 이유도 대를 이어 그의 화업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이번에 같이 출품된 남농(南農) 허건(許楗)은 소치의 손자가 되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은 소치 방계(傍系)의 족손(族孫)이 된다.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의 화훼(花卉), 심산(心汕) 노수현의 기명(器皿), 그리고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의 어해(魚蟹) 등 5명이 그린 합작도는 매우 귀한 작품이다. 이들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매번 두각을 나타낸 대표적인 동양화가들이다.
내고(乃古)박생광(朴生光, 1904~1985)은 일본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를 여러 번 방문했고 인도를 다녀 온 후 일본의 화풍을 버려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새롭게 수립한 중요한 작가다. 특히 <제주내왓당무신도> 10신위는 그의 작품에 14곳이나 등장할 정도로 영향을 크게 미쳤고 영주십경 등 제주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만익의 서정적인 정취의 판화, 사석원의 해학적 묵묘(墨描), 김택화의 빠른 필치의 테우, 이왈종의 발랄한 먹그림은 특별한 묘미를 준다. 이 외에 제주출신 변시지의 초기 황톳빛 그림, 양인옥의 초가의 풍정(風情)을 그린 그림도 귀한 그림들이다.
예술이 항상 대중과의 만남을 중시 여긴다는 점에서 소암기념관의 문희중 컬렉션 기획전은 기존의 서예관이라는 인식을 제고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은 자명하다.
시대상황이 학문과 예술의 융·복합적 성향을 강하게 띠는 현재에 예술 장르 간 유기적인 관계 설정은 이후 시대에 대세가 될 것은 분명하다.
소암과 문희중의 인연으로 시작된 이번 전시의 의미를 굳이 따진다면 소암과 문희중의 만남이야말로 오늘 예술을 대사회적으로 펼치는 성과로 표현됐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공공의 문화공간에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공성으로 회귀한 것은 한 컬렉터의 헌신적인 예술 사랑의 결과라 할 수 있는데, 문희중 컬렉션이 빛을 발하는 이유가 바로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모두가 예술을 즐기는 공공성을 취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