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롱이' 이영표(36)가 정들었던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초롱이'에서 '철인'이 되기까지 오롯이 한 길만을 달려온 그는 이제 한국 축구의 전설로 남는다.
이영표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7년 선수 생활의 끝을 알렸다. 공식 은퇴식은 한국과 스위스 간의 친선전이 열리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아듀 No.12'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임에도 팬들은 여전히 이영표를 '초롱이'라고 부른다. 어색하지 않다. 그라운드 위에 서 있던 그의 눈빛·축구를 향한 순수했던 열정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났다. 더없이 완벽한 애칭이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그는 초·중·고교를 안양에서 다녔다. 1999년 건국대를 졸업한 뒤 2000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안양 LG치타스(현 FC서울)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명장' 거스 히딩크 전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과 만나며 이영표의 선수 생활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된 이영표는 독보적인 기량을 뽐냈다. 체구는 작지만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기존 수비수들에게는 없었던 적극적인 오버래핑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이영표의 '헛다리짚기'는 축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사실상 그가 있는 왼쪽 풀백 자리에는 경쟁자가 없었다.
안방에서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이영표는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32강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1-0 승)에서 후반 25분 박지성(PSV에인트호벤)의 결승골을 도왔다. 이영표가 올린 오른발 크로스를 박지성이 문전에서 가슴으로 받아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그림 같은 왼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16강 이탈리아전(2-1 승)에서도 이영표의 활약은 계속됐다. 1-1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가 올린 오른발 크로스를 안정환이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극적인 골든골을 터뜨렸다.
이영표는 골이 필요한 순간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며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영표는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3년 스승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프로축구 에인트호벤(2003~2005년)에 입성했다.
아시아에서 온 작은 수비수는 유럽에 진출해서도 부침이 없었다. 이적 첫 해부터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현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겉보기에는 마냥 여려 보이지만 그는 진정한 '외유내강형' 선수였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거구들도 'Lee(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네덜란드 무대에 안착하며 가능성을 확인한 이영표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토트넘 핫스퍼(잉글랜드·2005~2008년)·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2008~2009년) 등 빅리그 명문 클럽에서 뛰며 세계적인 수비수 반열에 올라섰다.
전성기가 지난 30대에도 이영표의 도전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2009~2011년)과 밴쿠버 화이트캡스(미국·2011~2013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베테랑의 진가를 발휘했다. 전성기와 다름없는 기량을 뽐낸 이영표는 '철인'이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스타급 선수'가 되면 크고작은 사고 한 번쯤은 터뜨리게 마련인데 이영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오직 축구밖에 몰랐고 경기장 밖에서는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 그가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인간적으로도 완벽했던 이영표는 동료와 팬들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프로선수 은퇴식을 가졌다.
밴쿠버 구단은 지난달 28일 정규리그 최종전이자 이영표의 은퇴 경기에서 이영표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당일 경기 입장권에 이영표의 얼굴을 삽입했고 홈페이지에도 그를 구단 대표로 내걸었다. 최종전 주장도 이영표에게 맡겼다.
밴쿠버의 공격수 카밀로 산베조는 전반 44분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킨 뒤 이영표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은 뒤 골망을 갈랐던 공을 선물했다. 떠나는 동료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골 세러모니였다.
국가대표로서의 업적 역시 남다르다. 1999년 6월12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리아컵' 멕시코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그는 월드컵에만 세 차례(2002년 한일월드컵·2006년 독일월드컵·2010년 남아공월드컵) 출전하며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썼다.
2011년 1월28일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3·4위전 우즈베키스탄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이영표는 통산 A매치 127경기(5골)에 출장했다. 국내 선수 중 7번째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했고 홍명보 현 국가대표팀 감독(135회)·이운재(132회)에 이어 세 번째 최다 A매치 출전자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현역 유니폼을 벗은 이영표는 앞으로 친정팀인 밴쿠버에서 축구 행정·마케팅·구단 운영 등을 공부할 계획이다.
◇이영표 프로필
▲클럽
-안양 LG 치타스(2000~2002년)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2003~2005년)
-토트넘 핫스퍼(잉글랜드·2005~2008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2008~2009년)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2009~2011년)
-밴쿠버 화이트캡스(미국·2011~2013년)
▲국가대표
-대한민국 20세 이하(U-20) 국가대표(1999~200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1999~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