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일을 업으로 삼아 평생 해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만나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아직도 멀었다’는 것. 그들의 머릿속에는 ‘쳇바퀴처럼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국내 최고의 서예가로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소헌 정도준 선생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서예가인 그는 평생을 서예 연구에 몰두했는데도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그와의 만남은 이제껏 인식해오던 ‘서예’에 대한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가 알려준 사실은 서예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것. 이 점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그와의 만남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혹시 서예가 단순히 글쓰기라 생각했다면 이번 인터뷰를 통해 서예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길 바란다.
서예는 글이 아닌 예술이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산된.
서예가 집안의 둘째 아들
경남 진주 출신인 정도준 선생은 서예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전 초대 작가와 심사 위원 등을 역임한 서예가 유당惟堂 정현복 선생으로, 정도준은 그의 둘째 아들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의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대회에서 입상하며 처음에는 취미로 서예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자신처럼 힘든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걱정했으나, 한편으로는 대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소헌紹軒’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여가 활동으로 서예를 즐기던 그는 이 일이 그저 취미로 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 일중 김충현 선생을 사사하여 자신만의 서예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고급 문화로서의 서예
과거 서예가는 모두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도준 선생은 예전에 서예가는 화가보다 수준 높은 예술가로 추앙받았으며, 화가가 서예를 할 줄 알면 그 작품 세계의 깊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예부터 서예는 사대부의 고급 문화였어요. 서예를 할 줄 아는 화가는 그 작품의 품격이 남달랐지요. 당시 서예는 그림보다 한 단계 위의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처럼 서예 문화가 존재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에서는 서예를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부른다. 서법은 글을 쓸 때 어떠한 방식을 지킨다는 의미이며, 서도는 글쓰는 준비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도준 선생은 이 중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서예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늘 서예는 ‘법이고, 도이며, 예다’라고 말해왔어요. 나는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 진짜 서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가벼이 여길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는 동양 예술에서 서예는 하나라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예술 사조를 나라별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조형적 예술로서의 서예
정도준 선생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글씨인 듯 하지만 때론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그가 고대 상형문자를 작품에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깊이 있게 서예를 연구해온 그답게 어느 한 글자를 잘 쓰는 것만이 서예가로서 자신의 숙명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정도준 선생. 그는 중국 서예사를 공부하며 글자의 시초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시간이 흘러도 글자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며 간편하고 빨리 쓸 수 있는 글자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했다.
“과거 상형문자 중에서도 동물을 표현할 땐 그 형태대로 가로로 그리면 그림, 세로로 쓰면 글씨였어요. 흥미롭죠. 이처럼 글자가 생성되는 큰 물줄기를 따라가면 내가 글을 쓸 때 좀 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어요.”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은 서양 사람들을 감복시킬 정도의 조형적 아름다움도 갖추고있다. 프랑스 쇼몽 미술관에서 전시할 당시 미술관 관장은 글씨에 볼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서예는 그냥 글씨가 아닙니다. 선 하나에도 근골혈육筋骨血肉, 즉 뼈와 근육, 피가 흐르거든요. 그것들은 모두 살갗으로 덮여 있지요. 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예술 소양이 높다고 볼 수 있죠. 해외에서 전시할 때 갤러리 관계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도리어 내가 놀란 적이 많아요.”
또 그의 작품을 보면 글씨를 공간에 아주 효율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글씨로 구도를 잡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 적절히 여백을 남겨두는 것 역시 힘든 일일 터. 이런 구도와 여백은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일이 아닙니다. 글씨를 쓰면서도 화선지 안의 공간을 열고 닫아야 하며 가끔은 그 공간을 깨기도 하고, 종이 위의 공간을 안아야 해요. 풀어놓으면 그건 내 공간이 아닌 거예요.”
소헌 정도준 선생은 서예를 대중의 시선에 맞추기보다 그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캘리그래피 같은 손 글씨는 대중화되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수준 높은 예술을 추구하고 싶다고. 그것이 서예가 담고 있는 깊은 맛이다.
“나는 서예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처음 풀숲을 헤치고 나갈 때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것도 흥분되고 기대되는 아주 즐거운 일이지요. 지금도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