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있는 북녘을 향한 마음이 간절해 월북을 시도하다 구속돼 투옥되기도 했던 박정월 동문이 4.9통일평화재단을 후견인으로 지정한 뒤 8월 7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8월 16일 오전 8시 서울 안암동 고대병원 안치실에서 발인해 화장한 뒤 장기수들이 묻혀 있는 서울 금산사에 안치될 예정이다. 친인척들의 재산권 분쟁으로 장례일정이 늦춰진 것.
고인은 1930년 대구에서 출생해 중국북경공립 제1고등학교 재학중 해방을 맞아 귀국했으며, 한국전쟁 시기 부산지구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15년형을 받고 대구교도소에 복역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모친과 형제자매들이 북에 머물게 되고, 고인은 이복형제 2명과 남쪽에 남게 됐다.
한양대 교수 이영식과 결혼했고 양재학원과 고무공장, 다이아공장 등을 경영하며 수완을 발휘해 생계를 담당했고, 1976년 이른바 ‘오작교 사건’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남편의 전처 자녀들을 양육하고 일부 재산을 물려주기도 했지만 2019년 7월 15일에 4.9통일평화재단을 후견인으로 약정한 뒤 다발성 노인질환으로 사망했다.
가족과의 재산분쟁 등을 담당했던 김형태 변호사는 “남북이 분단되는 바람에 할머니가 고초를 여러 번 겪으셨고 개인적인 삶으로 봐도 굉장히 힘든 삶을 사셨다”며 “본인을 희생해서 뒷바라지해 준 자녀들로 인해 마지막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재산을 통일과 평화를 위해 써달라는 유지를 남기셨다”며 “평생 힘들고 어렵게 사셨지만 4.9재단과 통일단체들이 유지를 잘 받들어서 활동을 펴면 할머님이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