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를 대표하는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인 야성(野星) 강창덕 동문이 9월 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1944년 8월 17살 나이에 여운형 선생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단체 조선건국동맹에 참여했다가 ‘반일사상 유포’ 죄목으로 구속됐다. 이듬해엔 일본군 징병 거부로 또다시 구속됐다. 1947년엔 미군정을 비판하다 포고령위반 혐의로, 1952년엔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또 1961년에는 반공법 제정반대 집회 등으로 2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특히 1974년에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인은 1944년 11월 경북도청 공무원 모집시험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했다. 대구상고 야간부와 조선정치대학(건국대의 전신)을 졸업하고 1956년에는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로, 1958년에는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근로인민당·사회대중당 등 혁신계 정당 활동 외길을 걸었다.
오랜 수형 생활과 고문 후유증으로 진통제를 복용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1987년 12월 대구에서 ‘민족자주평화통일회의(민자통)’을 만들었다.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과 신민주연합, 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 통일연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활동했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