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식육 마이스터(Meister·장인<匠人>)' 자격을 국내 처음으로 획득한 뒤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독일식 육가공을 국내에 도입하려고 애쓴 임성천 훔메마이스터슐레 교장이 3월 8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68세.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1년 모교 축산가공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육가공 회사에 기술 연수생으로 갔다가 고교 과정인 직업학교에 들어갔고, 1987년 다시 독일로 가서 '식육수공업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했다.
제일제당 개발팀장 등을 거쳐 1989년 말 서울 송파동에 독일식 정육점 '마이스터 델리'를 열었다. 1년 만에 폐점하고 건국햄 대표이사와 제너시스 BBQ 맘&팜 대표 등을 지냈다.
고인은 저가 경쟁에 멍든 대기업 중심 육가공 산업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한국의 육가공업은 어묵을 만드는 어육(魚肉) 가공으로 시작했다가 1980년대 제일제당과 롯데가 참여하면서 축육(畜肉) 가공 시장으로 바뀌었다. 소비자들의 소시지 선호를 배경으로 매출이 급성장했지만, 저가 경쟁으로 품질이 떨어졌다. 해외 여행자가 늘면서 외국의 햄·소시지와 국내 제품을 비교하는 이들이 늘고, 육류 시장이 개방되며 육가공업이 공멸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은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 구조를 바꿔 독일처럼 식육 생산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육과 가공으로 나뉜 시장을 통합하고 소량 다품목인 수공업 형태 시장을 육성하자고 한 것. 1997년 12월 경기도 구리시에 '휴먼 마이스터'라는 정육점을 열기도 했다.
정부가 2013년 10월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식육 즉석 판매가공업'을 신설하고, 정육점이 다양한 가공품을 즉석에서 가공·판매할 수 있게 하면서 제도상 걸림돌은 사라졌다. 최근에는 최종 소비자뿐만 아니라 일반 음식점에도 양념육과 소시지를 팔 수 있게 됐다.
남은 문제는 전국 정육점 주인들에게 독일식 육가공 기술을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 고인은 농협 축산위생교육원 등에서 강의하던 와중에 2016년 독일의 마이스터 교육과정을 벤치마킹해 상설 육가공 교육기관인 훔메마이스터슐레를 개교해 전국 정육점 주인들에게 육가공 기술을 가르쳤다.
2019년 고인과 함께 책 '고기실무전'(팜커뮤니케이션)을 낸 김재민 '팜인사이트' 편집장은 "유럽은 육가공품이 전체 축산 시장의 60∼70%를 차지하지만, 한국은 소고기·돼지고기를 먹는 문화이다 보니 육가공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며 "고인은 처음엔 독일식 정통 햄·소시지를 팔려고 했다가 제도상 문제가 사라진 뒤에는 독일식 육가공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또 "돼지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할 때 삼겹살이나 목심은 식육으로 팔면 되지만 뒷다릿살과 앞다릿살은 햄·소시지로, 등심과 안심은 돈가스 재료로 가공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며 "그 방법을 가르쳐주던 유일한 스승이 떠났다"고 안타까워했다.